너무 흔해서 귀한 줄 몰랐던 꽃.
울 아래, 장독 곁에, 화단 구석에….
제 기억 안 어느 곳에건 함께 하던 꽃.
애써 챙기지 않아도 싹이 나고 꽃이 벌고 씨앗을 맺던,
늘 곁에 있어 당연한 개화로 여기던 꽃.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과 믿음으로 집안 어디에고 심어 피고,
역시 같은 이유로 손톱에 물을 들여 부정한 것을 막는 부적이 되어주던 꽃.
어머님께서 득병하신 후,
몇 해를 두고 표나지 않게 슬금슬금 사라져 버린 꽃,
'봉숭아'
꽃이 사라진 이유가 뭔지,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당연한 줄 알았던 개화"의 뒤에, 씨를 받고 뿌리는 어머님의 수고로움이 계셨거나, 화단을 두엄통으로 만드느라 밟고 올라가 꼭꼭 다져놓은 삼월이 언니의 숭고한 애씀이 있었기 때문일 거라는 짐작을 할 뿐입니다.
그렇게 시름시름 사라져 버린 후에,
어찌어찌 어머님 손톱에 물을 들여드린 것이 몇 해.
때마다 시루를 얹던 어머님의 치성과 같은 맘이었습니다.
'건강하시라! 건강하시라!'
"엄마, 이거 벗기지 말고 내버려 두셔요. 하룻밤을 나야 진하게 잘 들지요"
삼 년 전 여름.
어머니 손톱에 빻은 꽃을 얹어 묶어놓고,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서며 드렸던 부탁.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 당신 나가자마자 빼버렸어요"라고 삼월이 언니로부터 전해 듣고, (...아, 이것도 어머님껜 귀찮게 해 드리라는 유난스러움 일 수도 있겠구나….)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해 두 해가 그냥 지났습니다.
마당에 꽃이 사라진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만, "병중의 어머님"이 당연한 일상으로 여겨진 나태함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치성의 떡시루를 얹을 정도로 간절하지 않은 일상이 되어버린 거죠.
그러면서도, '어쩌면 이 여름이 어머님껜 마지막일지 모르는데….'라는 생각에 건너뛴 봉숭아 꽃물들이기에 맘 한쪽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해.
봉숭아 꽃이 어느 집 울 안에 활짝 피었을 그 여름, 어머님은 집을 나서 대처의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맞은 첫 여름.
계절은 다시 왔는데, 어머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삼월이 언니가 뒤늦게 얻어다 심은 봉숭아.
줄기에 심이 박히기 전에, 나팔꽃 덩굴에 치여 그늘 안에 삐들 삐들 숨만 붙어 지냈습니다.
그제, 칭칭 감은 덩굴을 풀어줬더니 구불구불 휘었던 허리가 바짝 서 있습니다.
오전에 모임에 나가 백일장 심사하고 돌아오는데, 허리를 바짝 세운 놈의 머리에 위태롭게 달린 꽃 한 송이가 발을 잡습니다.
"에이, 장마 전에 들여야지 장마 지나면 잘 안 드는 겨"
"잎을 함께 더 쪄야 물이 잘 드는 겨"
어머님의 말씀이 생시처럼 들렸습니다.
위에 매달린 굵은 잎을 모두 훑고, 달랑 하나뿐인 꽃을 섞어 백반과 소금을 얹어 빻았습니다.
온통 푸른 물뿐인데, 붉은 꽃물이 들까요?
붉건 푸르건 물이 들면 좋은 일이고, 들지 않아도 문제 될 것은 없는 일입니다.
지나간 것,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언제도 안타까움입니다. 안타까운 후회입니다.
지나갈 이 여름. 바로 이때.
복숭아 꽃물의 지금에, 내가 오롯이 있었으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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