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빼고 비닐우산 안에 비를 피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 다른 곳으로 새지 않았네요?" 폐인처럼 쑤셔 박혀 있던지, 일단 나가면 쥐약 설 먹은 개처럼 눈깔에서 시퍼런 레이저가 번뜩이도록 술에 취해 들어오던지. 둘 중의 하나인 일상이 어긋났으니 의문이 들기도 할 겁니다. '클났어, 이 사람아! 셤 공부해야 하는데, 책은 한 장도 펼쳐보지 않았고….'
내일은 벌초 다녀와 모임 참석해야 하니 글렀고, 모레는 또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 오늘밖엔 시간이 없는 셈입니다. 지금부터 밥 한술 뜨고 책 좀 펼쳐봐야겠습니다. 머릿속이 스펀지처럼 숭숭 구멍 뚫린 중늙이에게, 벼락치기가 통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날. 투명 비닐우산 밖으로 펼쳐진 다름없는 풍광들. 오고 가는 사람들…. 그 일상에 함께 했던 한 시절을 쓸쓸하게 떠올리며 그냥 담담하게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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