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다녀와야 하는 날이니 뭐라도 먹으려고 덜그럭거리다가 부엌문을 밀치니,
삼월이가 앞을 막고 앓는 소리를 한다.(저 눈까리 좀 보소 ~ㅎ)
"왜? 니 언니가 밥 안 챙겨주고 갔니?"
밥그릇을 살피니 사료가 그대로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고등어를 먹고 난 비린 것이 얹혀 있다.
"야, 비린 거도 싫고, 오로지 고깃국물여? 네가 미쳤구나! 잠깐 지둘러 이년아. 나부터 먹고!"
밥 먹은 그릇에 돼지기름을 아주 조금(비린 것이 있으니) 뜨거운 물에 녹여 위에 부어주고.
씻고 나와 살피니 국물만 싹 핥아 먹고 우리에 좌정해 계신다.
'어쭈라! 너 그따위면 진짜 국물도 없어!'
개 머리에 이용당했나?
아무래도 속은 느낌이다.
코로나가 무섭긴 한가보다.
늘 대기 환자들로 붐비던 병원이 한산하다.
병원을 나서는데 볕이 너무 아까워, 담배 사러 편의점 가는 길을 일부러 에돌아 역 광장 쪽으로 걸었다.
느릿느릿 굼실굼실... 편의점에 들르기 전, 광장 한편 흡연 구역 나무 아래 쓰레기통 옆에 앉았다.
천천히 담배를 먹으며 올려 본 하늘.
정수리에 걸린 태양이 휘황하다.
보훈 회관 마당을 가로지르는데, 만개한 매화 꽃잎 위에 벌들이 분주하다.
잠시 멈춰 서 그 날갯짓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나만 응달에 웅크리고 있구나….')
한 봉 남은 라면을 삶아 먹고 그대로 뭉그적거리다가 한 30분 깜빡 졸았다.
집에 돌아오며 열어 놓았던 간장독 덮으러 옥상으로 올라서는데,
문을 열자 어느 틈에 우리에서 기어 나온 삼월이가 후다닥 앞장선다.
'이년아, 너 증조할머니 살아계셨으면 넌 뼈도 못 추려! 어디 가이새끼가 지붕에 올라가냐고….'
밥그릇에 사료가 아침 그대로이고 안 하던 아양을 다 떠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속은 것이 분명한 듯싶다.
커피를 타들고 서재 책상에 앉는데,
의자를 낮추고 앉았더니 창밖 바람종이 더 눈에 찬다.
갑자기, "바람종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날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그런 날이면, 내가 내가 아닌 것으로 맘이 변한 것이겠고.
'맘 변하면 죽는다고 했으니, 아마 그 무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2%로 부족한 삼월이 여사가 우리에 깔아준 옷들을 어찌 끌어내는지 자못 궁금하다.
밥 챙겨주며 집어 넣어줘도, 낮에는 또 끄집어내서 깔고 앉아 있으니.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이럴 때 CCTV가 있으면 좋으련만. 풉!
금요일이다.
한주도 하루도 다 갔다.
아, 연정이 기숙사 태워다 주는 날이 이번 주인가? 다음 주인가?
생각의 고개를 잠시 돌리면, 속상한 것이 너무 많다.
튼실하던 삼두박근.
다 어디로 가고 수전증 걸린 노인네 손끝처럼 덜덜덜 애련한 경련으로 그 존재의 끄나풀을 힘겹게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리 경추의 울안에서 나온 근육이라지만,
인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해 느껴야 하는 당혹감이, 얼마나 더 찾아올는지….
The Ventures / Guitar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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