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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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안방

시간의 터울.

by 바람 그리기 2025.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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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부 다니는 길 주변 두렁에 보면 아직 밭을 지키며 더러 꽃이 핀 것도 보이고 절기 또한 하지 전이니, 햇감자보다는 움에서 꺼내 장날 가판에 늘어놓은 어느 노파의 묵은 감자일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제철 수확의 농산물이라는 관념이 무색해진 지 오래이니 이 또한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달곰 짭짤하게 몇 개라도 삶아 먹어보았으면..." 장날 지나칠 때마다 생각만 하며 작년을 그냥 보냈는데, 묵었거나 그렇지 않거나 삼월이 언니께서 찐 감자를 내오셨다.

 올해는 이렇게 기대한 것 없이 2년 치 미각을 한방에 충족시켰으니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사진을 자시 살피니, 가격표가 그냥 붙어 있는(추정컨데 다이소표) 접시.
 삼월이 언니는 역시 나를 하루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한 입 베어 문 뜨거운 감자를 입안에 굴리는데 그 어느 날의 풍경이 따라 구른다.
 청요릿집 <원산반점>에서 있을 아버지 환갑을 앞두고 누님들이 잔치에 곁들일 요리를 따로 준비한다. 지금은 헐고 새로 지어 바깥채가 된 옛 건물,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일자형 벽돌 건물 마루에 걸터앉아 커다란 스테인리스 양푼에 삶은 감자를 으깨어 갖가지 고명을 섞어 마요네즈를 베이스로 버무린다. 조카 환갑잔치를 도와주러 읍내 내려오신 섭골 작은 할머님께서 "멀쩡한 감자를 으깨니 별 이상한 음식도 다 있네?"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과정을 지켜보시다가 완성된 사라다를 시식하시며 "꼴보다 맛있네" 껄껄껄 웃으신다.
 그 눈에 선한 기억 속의 풍경을 바라보니, 아버님과 36년 차이 띠동갑 그때 나는, 군대를 막 제대한 20대 팔팔한 청년이었고 누님들 또한 당시 유일하게 출가했던 12년 띠동갑 큰 누님부터 대학생이었던 여동생까지 올망졸망 걱정 없이 푸르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작년에 아버님의 그때를 맞은 내 형편도, 나와 띠동갑 36년 차이 아들을 기준으로 위로 세 누이까지 그때와 판박이이니, 지금 아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시간이 "하고자 하는 모든 것마다 가능성이 무한 쾌스천으로 열려 있는 얼마나 축복받은 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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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을 두고 늘 "머슴 이름"이라고 놀리는 친구의 방문.
 내가 장래에 대한 뜻을 품고 잘 다니던 직장 하루아침에 때려치우고 앞치마 두르고 객지로 떠돈 지 몇 해, 뉴코아 백화점 직영 중식당에서 메인 셰프와 어정쩡 조리장 겸 칼판장으로 처음 연을 맺었으니 많은 시간이 흘렀다. 전라도 땅끝 섬에서 국민학교를 마치고 상경해 일찍부터 업계에 발을 디딘 그는, 그때 이미 업계에서 인정하는 실력 있는 유명인이었던데다가 상하 직급의 구분이 철저한 세계였으니 아무리 동갑이었어도 쉽게 가까워질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나를 "먹물"이라고 부르며 부하 직원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기 시작했고 그 연이 내가 앞치마를 벗어던진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가 먼저 내 개인 업장을 차렸고 얼추 10년을 버벅거리다가 금 같은 시간만 까먹고 뒤집어엎었다. 내가 그렇게 손을 털고 그 세계와는 연을 끊고 지난 시간을 지워버린 후, 그는 뒤늦게 본인의 업장을 차렸고 나만큼 장사를 하다 그 역시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뒤집어엎었다. 아내끼리도 동갑이었고 성격이나 성향도 어벙벙 비스므리했는데, 나는 업장을 뒤집어엎으며 결과적으로 애들에게 엄마를 지켜줬고, 그는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다가 아내를 먼저 보냈다.
 나는 그 후 몇 년을 폐인으로 보냈고, 친구는 자신의 경력과 실력으로 다시 전국 유명 업장 메인 셰프로 복귀했고 생활 중이다.

 얼마 전, 본인 차 번호가 내 전화번호와 같은 것을 뒤늦게 알았고, "이것은 너와 내가 보통 인연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감탄하는 친구.
 술이 한 순배 돌고 난 후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않는다"라는 한탄과 푸념을 뱉는다.
 "지난해 특별한 생일을 그냥 지나친 두 아들에 대한 서운함"
 "올 맞은 어버이날 전화 한 통 없던 두 아들에 대한 노여움"
 두 부부의 나이가 같으니,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을 속속들이 지켜봤다. 그렇지 않은 부모가 있겠냐만, 적어도 내가 지켜본 친구의 두 아들을 향한 양육 과정은 "올인"이었다.
 <청와대 경호실 취직>
 어쩌면 실소가 나올 소박한 현실적 목표를 두고 두 아들을 체육 특기생으로 뒷바라지했다. 아이들도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마쳤고, 한참 두각을 나타내다 운동에서 손을 뗀 첫째는 자기 직장 생활에 충실한 건강하고 건실한 청년으로 자리 잡았다.

 "안타깝지만 어떡하냐? 부모라는 이름으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네가 다 품고 가야지. 엄마라는 중간자가 사라지고 없어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여겨!"
 편이 되어주지 않는 내 말에 통화 녹취까지 들려주며 화를 낸다.
 "이게 자식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말이니?"
 "..."
 친구의 지랄 같은 성격은 익히 알고 있으니, 사달이 벌어진 전후 사정은 짐작가지만...
 "친구야, 지금 아이들과 같은 현재를 살고 있다고 아이들의 시간과 우리 시간이 평행인 동급의 시간으로 생각하면 결코 안도ㅑ. 우리는 이 위에 시간을 아이들은 아래의 시간을 딛고 두 시간이 사선으로 연결된 관계인 거여. 그러니 아래의 시간이 위 시간에 맞게 생각하기란 힘든 일이고 바래서도 안도ㅑ.  위에 시간이 아래 시간과의 간극을 포용해야지..."

 아들에게 단단히 맘이 닫힌 친구.
 돌아가는 길에,
 "고얀 놈들이네. 아무리 이러저러해도, 지 애비 환갑에 전화 한 통 안 햐!"라는 말로 등을 토닥여줬다.

 연인도 있겠고, 친구도 있고, 선후배 잠시 의지할 곳도 많겠지만...
 생계를 위해서라면 멀쩡한 제 집 두고서 여차하면 노숙할 생각으로 온갖 살림살이 잡동사니가 뒷좌석에 가득한 친구의 차.
 떠나보내고 돌아서는 맘이 "끈 떨어진 뒤웅박"을 보는 듯 편치 않다.

 

 
 202506102359화
 윤항기 & 윤복희-친구야 mix
 ↘G병원_연기_혈압,어깨약
 ↘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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