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생일.
부엌에 들어가니 불기가 없습니다. 개수대 안과 싱크대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그릇들.
'연정이 국 안 끓여놨나?'
혹시, 잊었을까 싶어 톡을 보냈더니 "안 끓여 놨다" 합니다. 차라리 "깜빡 잊었다"란 답을 들었으면 좋았을 일입니다. 넷째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내 배 위에 엎드려 잠을 잤습니다. 아래로 두 아이는 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엮여, <부모에게 아낌 받지 못하는 아이가 다른 누구에게 존중받으랴>라는 생각이 들어 속상했습니다.
갈 때까지 갔구나...
미역 한 줌을 담가놓고, 감자 세 덩이를 까고, 건너 채로 가 냉동실을 열었습니다. 멸치로라도 국물을 낼 생각이었습니다.
'휴...'
꽁꽁 싸맨 비닐봉지가 이쑤시개 한 개도 못 들어갈 만큼 가득 차 있는 냉동실. 잘못 꺼냈다가는 이 빠진 퍼즐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손가락으로 두어 번 꾹꾹 찔러보다 말았습니다.
미역국을 끓여 놓고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덜어 먹었던 반 봉 남은 식모 커피를 타서 빗소리를 듣습니다.
"아빠 물 좀 떠다 드려. 거기 노란 컵에다..."
'어디? 노란 컵? 이거? 오줌 컵에다?'
커피를 타서 앉았자니, 얼마 전 모녀가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빙긋 웃음이 났습니다. 그래요, 어쩌면 연우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오줌을 받았던 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내가 알지 못하는 서로의 기억을 쌓아가며 서로의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오류로 기억 되더라도 어떤 이에게는 간절한 현재가 되어 말입니다.
어쨌건, 미역국을 끓이며 '신뢰,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갈 때까지 갔다'란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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