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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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착한 거짓말.

by 바람 그리기 2023.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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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눈곱을 매달고 집을 나서 시내를 휘이 돌아 역 광장 흡연 부스 옆 섬뜩한 돌의자에 앉아 역사로 종종걸음 하는 여자의 물기 머금은 머리칼 아래 씰룩이는 엉덩이를 소품처럼 바라보며 방금 편의점에서 사 온 따끈한 담배에 불을 붙입니다.

 나설 때 웅성거리고 앉아 있던 용역 사무실 앞 인부들이 몇몇은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물고 몇몇은 우두커니 서서 어쩌면 하루를 공치게 될 불안한 예감에 마감이 다가온 새벽 인력시장의 끝 무렵을 붙잡고 차로 건너 노숙인 같은 행인의 쓰레빠 끄는 소리를 향해 일제히 고개 돌립니다.

 그제 사다 놓은 브로콜리 한 꽁다리.
 어젯밤에 손질해 식초 푼 물에 담가 놓았던 브로콜리.
 해체해 식초 물에 담가 놓고 그냥 잠들었던 브로콜리를 맛 가기 전에 얼른 데쳐서 냉장고에 넣어둬야겠습니다.
 소금을 몇 꼬집 넣은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 예고 없이 토막 난 기억의 필름 몇 컷이 섬광처럼 번쩍, 지나갑니다.


 Y,
 짐작할 수 없이 섬광처럼 번쩍 나타난 심상은 예고 없는 급작스러운 등장만큼이나 잔상을 남길 틈도 없이 휘리릭 사라졌습니다.
 단칼에 베어낸 것 같이 뚝 떨어져 나간 시간.
 그 강렬했던 없었던 것 같은 시간의 토막을 조심스레 손안에 올려놓고 생각합니다.
 "착한 거짓말"
 
 Y,
 "착한 거짓말"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있다면 옳은 것일까요? 그 옳은 것의 기준점은 처음이었을까요? 마주 보던 과정이었을까요? 아니면 마지막 닿은 그곳에서 되돌아보는 비겁한 합리화의 자조일까요?

 Y,
 오래된 집 마당에 예고 없이 비가 쏟아집니다.
 움켜쥔 손안의 섬광 같은 덧없는 기억의 토막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 비와 함께 떠내려갑니다.

 나는 있었으나 없었던 것 같은 그 섬광 같던 시간을, 섬광같이 번쩍 나타났다가 휘리릭 사라져 버린 그 눈멀게 했던 시간을 잡고 착한 거짓말 같은 노래를 듣습니다.

 


202307111223화
이문세-사랑이 지나가면 MIX 20230711 무각굴의 비
점슴 맛나게 드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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