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동으로 / 신동문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이 야위고 흰
손가락은
다 무엇인가.
제 맛도 모르면서
밤새워 마시는
이 술버릇은
다 무엇인가.
그리고
친구여
모두가 모두
창백한 얼굴로 명동에
모이는 친구여
당신을 만나는
쓸쓸한 이 습성은
다 무엇인가.
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다 못 깨친
이 답답한 목숨의 미련
미련을 되씹는
이 어리석음은
다 무엇인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인데.
신동문
1928 충북 청주 출생.
1947 서울대 문리대 중퇴. 결핵으로 요양.
1956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선기>당선으로 데뷔.
제1회 충북문화상 수상.
1960 <새벽>지 편집장 역임.
1964 시 <비닐우산>등을 발표.
1973 신구문화사 주간 역임.
1975 농장 경영.
1993,9 영면(향년 65)
TV 무슨 프로그램인가
지금 시대가 기억해야 할 생애 조명에서 <신동문> 시인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정지용>과 <홍명희>의 뒤를 잇을 충북 지역의 대표 문인이었으나 박정희 독재정권의 암울하던 어느 날 절필을 하고 너무 쉽게 기억에서 잊힌 시인이라는.
현실참여가 시인의 책무이고 늘 살아 저항하는 시를 읊었다는.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 그의 대표 시가 흐른다.
'어!'
정확하게 삼십삼 년 전, 내 나이 스무 살 무렵
먹고 사는 형편은 시인이 살던 세상보다야 풍요롭게 나아졌겠으나 군홧발로 집권한 절대권력은 그 주인공만 바뀌었을 뿐 거리와 도시마다 늘 최루가스가 자욱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술이 아니면 잠재울 수 없었던 내 안의 그 뜨거운 것들.
그 무렵, 삼성출판사에서 1973년에 발행된 한국현대문학전집을 읽어 내려가다가 내 가슴에 파문을 그은 시가 바로 이 시였다.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에 시인이 말하고자 한 바를 무에 그리 깊게 알 수 있었겠냐만 아무튼 그때 나는 이 시를 종이에 적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놓고 <세수하고 나서 거울을 보면서>,<술에 만취해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서>,<이러면서 저러면서>, 늘 일상 안에 두고 보고 또 보고 읊조리며 보냈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이 시를 지은 시인을 한번 꼭 봬야겠다. 살아는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었는데
시구의 강렬함은 옅어지고 시인에 대한 생각마저도 까맣게 잊고 반생을 넘어서고 말았다.
오늘 TV를 보면서야
'아. 이 시인이 그 시인이었구나….'.'아버지와 동갑이셨네…….'.'가까운 곳에 계셨는데 몰랐구나…….'
이 시의 강렬했던 시구들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거나, 시인을 만나 몇 마디의 덕담이라도 건네받았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어찌 변해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곰팡이가 핀 책을 다시 펼쳐 잊어버린 시간을 천천히 읽노라니
늘 뜨거운 가슴으로 패기 만만하던 내 청춘의 한때에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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