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님,
제 글을 다 읽으셨다니
떡을 해드려야 하는데, 팔이 짧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이렇게 퍼다 담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죄다 들어주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
감정이입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내 살이 아닌 남의 살을 바른다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 가요.
제 글이 잘났음이 아니라
시인님의 인내심에 진심으로 감사와 함께 존경을 표합니다.
세상에 높고 또 더 높은 글들이 탑을 이루는데
흔들거리고 맛을 잃은 허섭한 글들을 들춰보아 그 정성을 수놓아 주신 일이
내게는 영광입니다.
허나
저는 너무 말이 많고
엄살이 심하고
사물을 부풀리고 치장하기에 바쁩니다.
이것은 가짜 시인이 아닌지요..... 저는 가짜입니다.
물론 시를 쓰는 시인과 시처럼 사는 시인이 있음을 써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 보다는 시처럼 사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명시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겠지만
시처럼 사는 인생은 가시의 면류관을 줄 것입니다.
각각 달란트가 다르겠지요.
제 글을 읽어주신 시인님은 부디 두개의 달란트를 모두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머리에 쓰시고
가시 면류관을 가슴에 품어 주세요
입술로 구호 같은 시를 쓰지 마시고
가슴으로 흐르는 핏물 같은 시를 나누어 주세요
제 수업 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리기> 라는 수업이 있습니다.
바람을 그려 보아라
텔레파시를 그려 보아라
사랑을 그려 보아라
향기를 그려 보아라
그런데요 시인님
향기와 냄새는 어떻게 차이가 나나요
그것은 어떻게 그려야 하지요?
바람은 또 어떻게 그려야 하나요
바람은 어떤 걸음이지요?
아이들은 대부분 사물의 형태로 보이지 않는 것을 나타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그것이 아님을 압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일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사람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는 그 감성이
결국 그런 시를 쓸 수 있는 분이라고 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게 감동을 전해 준 그 조용한 발걸음이
진짜 시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 시인님의 왕 팬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살다가 뵐 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는 술 한 잔 제대로 사겠습니다.
오늘 기분이 참 좋습니다. 감사드려요...
선생님!
아주 오래전에, 시를 쓰는 시인과 시처럼 사는 시인에 대한 제 짧은 물음에
선생님의 방에 제게 남겨주셨던 배려의 글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글을 올리고 그 다음 날인가 사라져 버린 글로 기억됩니다.
어쩌면,
선생님의 기억에서도 지워져 버린 글이 다시 제 방에 옮겨졌다는 것이
당황스럴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어젯밤엔,
처음 온라인에 방을 열었던 타 사이트에 오랜만에 들렸다
선생님께서 올리셨던 이 글을 찾았습니다.
"우린, 꼭 언젠가 만났던 거 같다"
던 말씀도 떠올렸구요.
오늘은 호우주의보가 내리고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종일을 빗소리를 들으면서
댁의 뒷동산 대숲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그려보았구요.
혹여, 비 피해는 없으실지 걱정도 했습니다.
멀리 공부하러 가셨던 따님은 지금쯤 어찌 지내실까...
고양이는. 나무에 앉아 지저귀던 새들은. 다향을 나누고 오셨던 스님은. 문우님들은.......
일전에 어디선가 또 다른 시집을 발간하신 소식을 들은 것도 같고...
선생님께서 제게 해주셨던 지난 배려의 글을 보면서,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이지.
내가 있을 자리에 있는 것인지.
가시 면류관이 가슴을 찔러 흘러내린 피가 있기나 한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한 하루였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좋은 날 뵙기를 소원합니다.
20120815수
성봉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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