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날이 오늘이었는지, 그날 그 시간이 되었는지도 몰랐지. 전화를 받고야 부랴부랴 나가 술밥 먹고 돌아왔지. 돌아와 샘에 나가 좍좍 물 뿌리고 들어왔지. 들어와 맛난 커피를 내려 이토록 절절한 음악을 들으며 깊게 담배를 먹고 있지.
아, 나는 지금을 만드는 이 모든 그림에 티끌만큼도 더는 보탤 것 없이 참으로 행복한 거지.

물기를 대충 털어낸 알몸으로, 안으로 들어오는 자연스러운 걸음의 이 오래된 집 마당의 우물 속 같은 자발적 고립의 어둠이 행복한 거지.
식모커피와 냉동 동결 커피를 번갈아가며 온갖 장난질로 더 나은 미각을 궁리하며 맛보던 여태의 중독이 무색하도록, AI의 작품과 비견되는 캡슐 커피의 회오리가 만드는 범접 못 할 거품에 심취해 잡은 이 찻잔이 너무나도 행복한 거지.
순자야!
영자야!
몹쓸 갑순아!
이 모든 것을 뭉뚱그린 지금의 간결한 행복을 혼탁한 부정(不定)의 바닥으로 애써 끌어당기고 있는 비만한 가난아!
그리하여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아슬하게 부침하게 하는 그대야!
살아있는 자야! 떠난 자야! 잊힌 딱한 자야!
너의 부정(否定)은 지금의 나를 이렇게 넘치도록 홀가분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지.
정말 그러한 것이지.
허벅지를 팍팍 꼬집는 밤꽃 냄새 천지에 요동하는 이 밤에,
참으로 그러한 것이지.
아,
삶은 진정 숭고하고 아름다우니,
진실을 찾아 떠도는 수도자의 누더기 가사만큼 궁핍하지 않다 하여도,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 하면 삼월이 똘똘이에게도 면목없는 일이지.
아무개야!
오늘을 닫는 이 극존칭(極尊稱)을 부디 믿어주길 바라는 것이지.
202506122359목
Wilhelm Kempff & 위일청-Beethoven Tempest 3 MIX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열, 용 술밥_기똥찬 삼겹살/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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