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가 가능한 것은 소유가 용用이 되기 때문이지요. 노자의 역설입니다. 나는 무소유의 무의 가치를 예찬하기보다는 차라리 우리 사회가 숨기고 있는 보이지 않는 무, 숨겨진 억압 구조를 드러내는 관점에서 이 장을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 내가 오늘 읽은 책 249쪽에 나오는 말입니다.
스님들의 무소유, 나는 그 말에 콧방귀를 뀝니다. 무소유가 그리 탐나면 스님이 되지 말고 노숙자가 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절은 무소유하기에 딱 좋은 여건입니다. 그것은 부유함입니다. 스님들의 그 부유함을 중생에게 권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무소유도 무소유할 만한 여건이 될 때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무소유가 인간에게 있기나 한지 의문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자는 끊임없이 소유에 대한 생각을 소유합니다. 그것이 크던 작던 담고 살아야 하는 천형인 것입니다. 결국 수행은 무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소유해야 하는 현실에서 오는 법입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사막의 꽃을 생각합니다.
사막의 꽃은 꽃잎이 세 장 밖에 없는 볼품없는 꽃입니다. 어린왕자는 사막의 꽃에게 사람들을 보았냐고 묻습니다. 사막의 꽃은 사람들은 뿌리도 없이 이리저리 떠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뿌리가 자랑스러운 거지요. 거친 모래바람과 숨이 막힐 듯 한 갈증을 견뎌내며 그래도 뿌리를 갖고 꽃을 피워낸 자신이 스스로 대견했던 것입니다. 사막의 꽃은 꽃잎도 세장이나 있고 뿌리도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갖고자 애쓰는 것들이 처연합니다. 소유해야 할 것들과 싸우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이 어찌나 힘이 드는지 소유한 것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사막의 꽃은 수행자입니다. 오히려 뿌리가 없는 사람들을 측은히 바라봅니다. 무소유를 위해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을 말입니다. 꽃은 때로 사람들이 무소유로 사치부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나의 생각들은 성봉수 시인의 『모서리에 앉아 술을 먹다』라는 시를 폰으로 다운받아 읽으며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나는 전자책에 무지하고 그 사용법을 잘 알지 못해서 한참을 헤매고 난 뒤에 다운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맞추는 일이 언제나 늦습니다. 무심코 읽어가다가 「옥수수를 먹으며」에 꽂힙니다. /그냥 덥석 깨물어서 있으니까 먹는다/는 옥수수는 몇 g의 소유로 각자 뱃속으로 들어갔는지 짠한 마음에 읽었습니다. 독한 년, 불쌍한 년도 애들 엄마도 봉수도 끄집어 버린 아기도 영글어 가는 아이들도 옥수수 알갱이로 다닥다닥 붙어 저마다 씹히고 있습니다. 모두 시 한편에 붙어 수행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옥수수를 먹는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사막의 꽃처럼
배부른 무소유는 배부른 돼지입니다. 배고픈 소유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런지 말런지 생각의 끈이 흐릿해집니다. 시인이 로또를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에게 로또 한 장 철썩 당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무소유에 배터지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인의 결핍을 찬송하는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인들은 가진 것이 많아야 합니다.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이 삭막한 사막에서 살기 위해선
<무소유가 가능한 것은 소유가 용用이 되기 때문이지요. 노자의 역설입니다. 나는 무소유의 무의 가치를 예찬하기보다는 차라리 우리 사회가 숨기고 있는 보이지 않는 무, 숨겨진 억압 구조를 드러내는 관점에서 이 장을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 내가 오늘 읽은 책 249쪽에 나오는 말입니다.
스님들의 무소유, 나는 그 말에 콧방귀를 뀝니다. 무소유가 그리 탐나면 스님이 되지 말고 노숙자가 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절은 무소유하기에 딱 좋은 여건입니다. 그것은 부유함입니다. 스님들의 그 부유함을 중생에게 권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무소유도 무소유할 만한 여건이 될 때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무소유가 인간에게 있기나 한지 의문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자는 끊임없이 소유에 대한 생각을 소유합니다. 그것이 크던 작던 담고 살아야 하는 천형인 것입니다. 결국 수행은 무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소유해야 하는 현실에서 오는 법입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사막의 꽃을 생각합니다.
사막의 꽃은 꽃잎이 세 장 밖에 없는 볼품없는 꽃입니다. 어린왕자는 사막의 꽃에게 사람들을 보았냐고 묻습니다. 사막의 꽃은 사람들은 뿌리도 없이 이리저리 떠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뿌리가 자랑스러운 거지요. 거친 모래바람과 숨이 막힐 듯 한 갈증을 견뎌내며 그래도 뿌리를 갖고 꽃을 피워낸 자신이 스스로 대견했던 것입니다. 사막의 꽃은 꽃잎도 세장이나 있고 뿌리도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갖고자 애쓰는 것들이 처연합니다. 소유해야 할 것들과 싸우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이 어찌나 힘이 드는지 소유한 것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사막의 꽃은 수행자입니다. 오히려 뿌리가 없는 사람들을 측은히 바라봅니다. 무소유를 위해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을 말입니다. 꽃은 때로 사람들이 무소유로 사치부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나의 생각들은 성봉수 시인의 『모서리에 앉아 술을 먹다』라는 시를 폰으로 다운받아 읽으며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나는 전자책에 무지하고 그 사용법을 잘 알지 못해서 한참을 헤매고 난 뒤에 다운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맞추는 일이 언제나 늦습니다. 무심코 읽어가다가 「옥수수를 먹으며」에 꽂힙니다. /그냥 덥석 깨물어서 있으니까 먹는다/는 옥수수는 몇 g의 소유로 각자 뱃속으로 들어갔는지 짠한 마음에 읽었습니다. 독한 년, 불쌍한 년도 애들 엄마도 봉수도 끄집어 버린 아기도 영글어 가는 아이들도 옥수수 알갱이로 다닥다닥 붙어 저마다 씹히고 있습니다. 모두 시 한편에 붙어 수행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옥수수를 먹는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사막의 꽃처럼
배부른 무소유는 배부른 돼지입니다. 배고픈 소유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런지 말런지 생각의 끈이 흐릿해집니다. 시인이 로또를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에게 로또 한 장 철썩 당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무소유에 배터지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인의 결핍을 찬송하는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인들은 가진 것이 많아야 합니다.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이 삭막한 사막에서 살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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