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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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꿀밥

by 바람 그리기 2015.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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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내린다.

월요일 이후 처음인가?

뭐가 그리 바빴는지…….

 

컨디션이 급격하게 추락한 엄마.

어제 아침밥 싸움 중엔 통곡을 다 하셨다. 울화와 섭섭함에 내 기분도 엉망이었고 병원에서 드신 점심에도 안 먹네! 먹어야 하네…….

그래도 그제 저녁까지 퉁퉁 부어 열감이 있던 투석 팔의 상태가 어제 아침엔 다소 진정되는듯싶어, 여차하면 대전 병원으로 출발하려고 챙겼던 입원 물품들을 다시 원상 복귀시켜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앞에 입원하셨던 것이 늦은 봄쯤이었나? 입원 후 얼마 있어 메르츠가 전국적으로 확산한 무렵이었는데…….

여름 잘 나셨고, 기력이 부치실 때가 되긴 했어도 근력 딸리지 않게 애를 썼는데……. 그제 아침 자시고 팔 때문에 병원 다녀오신 후로 속 뒤집힌다고 점심상을 놓고 나랑 실랑이 하다 결국 자싯물 통에 밥상 뒤집어엎고 엄마도 나도 점심을 걸렀더니 어제 투석전 건 체중 측정하니 여지없이 평균 체중보다 500g이 빠졌다. 식욕이 돌아오지 않으시면 다음 주쯤엔 영양제라도 한 병 놔 드려야 할까 보다.

 

집으로 돌아와 바로 햅쌀 포대를 풀고 압력솥에 밥을 지었다.

오랜만에 갓 지은 백미를 맛본 이유도 있겠지만, 세상에 그렇게 만난 밥은 처음 먹어봤다. 그제 엄마와 점심상을 놓고 한 바탕을 치루고 홧김에 담근 깍두기와 조개 미역국을 곁들이니 정말 꿀밥이다. 식욕 돌아오시게 모처럼 명란젓을 내어드렸더니 엄마도 꿀 처럼 잡수시며 감탄을 연발하셨다.

"맛나다! 맛나다!"

 

산삼과 약속 때문에 서둘러 허기만 지우고 도중 기별 온 백곰과 합석해서 석갈비에 쌈밥. 어제 병원 대기실의 신문 삽지 광고를 보고 동창 최양이 이전개업을 한 것을 알고 찾아갔는데, 산삼은 어제도 다녀왔단다.

남녀선배후배노인에 이르기까지, 찾아온 모든 손님이 눈에 익다. 향우회에 다녀온 기분. 2% 부족한 준비 때문에 앞뒤 없이 어수선하긴 했지만 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파하고 카프리에서 입가심하고 역사를 관통하며 새로 개통한 동서연결 통로를 지나 집으로.

 

역사를 넘어서 대합실 입구 로비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 들고 달과 등과 커피를 세워 놓고 사진을 찍다가

'뭐하는 거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용변을 보고 개똥을 치우시다, 고무줄이 끊어지고 늘어져서 삼월이나 깔고 자라 던져버린 내 추리닝을 챙기시며 노여워하신다. 벌써 몇 번째다.

"줄이 끊어지면 줄을 넣고 빨아서 입혀야지, 그런 건 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 말여? 애이고……."

'엄마, 그거 내가 버린겨…….'

 

 

오랜 시간 오랜 기억을 함께하던 침산리 육교가 허물어졌다.

언제 그곳에 그것이 있었느냐는 듯, 너무도 쉽게 잊혀간다.

그 잊힘이 모두에게 너무 익숙하다.

 

이제 점심 전쟁 때다.

얼른 전쟁치루고 담가놓은 양발 나부랭이를 빨아 치워야지.

루비나의 눈이 나리네를 어찌하다보니 아침내 들었다.

의도한 바는 없지만, 푼수....

백지영의 Dash를 따뜻한 커피에 녹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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