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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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본성

by 바람 그리기 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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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 삶아 밥 한술 말아 상을 물리며 보니 자정이 넘었다.
 헐~~~
 '담배 사러 가야쥐...' 중얼거리다가 불식 간에 또 스르르 잠들었다. 비몽사몽이었건 개처럼 쓰러졌건 어땠건 덕분에 모처럼 밤에 몸을 맡긴 충실한 날이었네.


 요강 들고 세수하러 샘에 나온 김에 조리에 물 담아 화단에 물 주고 들어오려는데, 나팔꽃이 나올 대문 앞 빈 화단이 파헤쳐져 있다. 삼월이 언니가 지 동생 똥 정리한 거라면 음흉한 자가 이렇게  표 나게 허술할 리는 만무하고, 흩어진 흙을 손으로 쓸어 정리하려는데 손에 잡힌 무엇.
 보기도 민망한 이것이 무엇인고?
 왠지 싸늘한 이 기분...
 차례로 마당 안쪽 화단을 향해 물을 주어 가는데, '이런!!!'
 토란 화분 하나가 심하게 파헤쳐져 있다.
 삼월이 ㄴ 최애 화분이니 짐작 가고도 남는다.
 이제 겨우 실뿌리 벌기 시작한 토란은 내동댕이쳐 있고 그 자리에서 또 발견된 정체불명의 민망한 물건.
 토란을 다시 심고, 민망한 그 물건을 들고 눈을 꿈먹거리며 눈치 보고 있는 삼월이 ㄴ에게 들이밀며 지청구하고 다시 돌아서 하던 일을 하는데...
 마지막 장독대 위 창포 화분도 파헤쳐져 있다.
 '이런, 염병할 ㄴ! 하다 하다 이거까지 헤집었네! 도대체 뭘 감추느라고 이거까지 헤집은 겨! 이 개 ㄴ아!'
 창포 옆의 돈 나물이 막 벌기 시작해서 한 끼 먹을 만큼은 되기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버럭! 지르는 소리에 우리에서 슬그머니 나와서는 안채 현관 쪽으로 쪼르르 내뺀다.


 창포 화분에서 끄집어내고야 이 민망한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다이소 표 개껌, 부직포 위에다 전분 가공물을 붙여서 만드는 모양인데, 퍼즐을 맞추니 골두 부분 하나가 부족하다. 먹었을 리는 없고, 그것은 또 어디다가 감춰둔 겨?


 2% 부족한 것, 어쩌면 그만큼 본성에 충실한 얘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똑똑하던 다른 개들은 하지 않던 짖을 보면 말이다.
 그 모자란다는 판단도 어찌 보면 참 이기적인 기준이었던 듯싶고...

 차를 한 잔 타 서재에 앉아 잡히는 대로 갈피를 열고 무심하게 라디오 앱을 열었는데 그녀가 나왔다.

 "...깨지거나 버려질까 울컥거리는 두려움과 불안의 소멸은 몸과 함께 순장될 것이기에 그저 얌전히 당신의 손길을 바루는 일뿐이다..."
 내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시인 "나호열"의 「화병」에서


 거의 300일은 YTN만 틀어 놓고 지내는 까닭인지 몰라도, 보이지 않던 그녀가 지구 어느 구석에서 이렇게 잘 살아 있었다.
 일요일이니 녹음 방송일 텐데, 담당 PD 연배가 짐작되는 음악들.
 흘러나오는 음악 족족 회춘하는 기분이다.

 마당에서 덜거덕 소리 나는 것이, 삼월이 언니 기침하셨는가 보다.



 <p=font style="background-color: rgb(255, 102, 0);"></p=font>
 주현미가 꺼내준 음악, F.R.David-Words.
 이제라도 아침을 먹을까? 조금 더 버티다 아점을 먹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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