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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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스팸 안부.

by 바람 그리기 2016.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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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와 앉아 술잔을 나눈다.

쇠고기가 떨어져 돼지 막창을 씹는데,

울간 냄새가 난다.

분비물과 짚이 뒤섞여 질척거리던 할머님댁 아래 마당의 두엄 통 옆 돼지울간에 대한 기억.

잘 익은 놈을 골라 내 앞 접시에 챙겨주던 한때의 얼굴에 대한 기억.

 

술이 몇 순배 돌고 점방 앞에 나와 담배를 먹는데

친구의 대학 동문 모친 부고가 온다.

그러는 동안,

기별이 끊긴 오랜 친구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 뿌리를 내린 친구.

어쩌면 그곳을 고향이라 여길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다.

총각 시절엔 명절 때마다 찾아와 부모님께 안부의 절을 올리곤 했는데, 결혼 후에도 처가에 다니러 오면서 전화 안부라도 나누었던.

그러던 친구가 어느 하루 기별을 끊고 관계의 끈을 놓아버렸다.

결국은 '먹고사는 내 형편' 안에서 관계의 반경이 결정되는 것이겠으나 소원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간, 전화통화와 SNS로 몇 번 궁금한 근황을 물었지만, 답이 없다. 그렇게 내 관계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려나 있었지.

 

'눈 안 뜨면 하루아침에 그만인 나이에, 무슨 대단한 먹은 맘으로 단절을 택했을까? 이젠 악착같이 잡은 것들을 내려놔도 될 텐데….'

'어머니 건강은 어떠신지'라도 물어봐야겠다.

전화가 음성으로 넘어가도록 대답이 없다.

그의 아내에게 전화를 거니 바뀐 번호로 안내된다.

아내 역시도 무반응이다.

……. 어쩌면, 지난 시간 안에 놓인 자신의 기억이 구차해졌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 해도, 도긴개긴인 인생에서 뭘 그리 모를 세우며 살까…….

 

오늘 아침에 문자가 왔다.

보낸 문구가 맘을 거스른다.

('...살아는 있네. 염병할 놈, 누군 안 바쁜 놈 있어?. 그래, 네 잘난 맛에 네 궁전에서 띵까띵까 살 거라….')

나의 안부는 놈에게는 귀찮은 스팸쯤이 되었음인가?

내 오랜 친구와의 관계는 이쯤까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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