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가 봉분 전면의 떼를 홀딱 벗겨 놓았으니, 잦은 비에 허물지나 않았는지...
한식 인사를 놓쳐 늘 찜찜한 마음을 안고 점심 먹고 장화 신고 삽 챙겨 출발.

툭하면 눈비가 와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오르는 산길은 밤껍질이 바싹 말라 푸석거리고 시내도 고양이 오줌만큼 물이 흐른다.
물가로 내려왔던 고라니가 산 위로 후다닥 도망간다.
염병, 다 올라갔는데 차에 폰을 놓고 왔다.
다시 빠꾸 오라이~
묘 마당 잔디도 겨우 푸른 촉이 비추니,
봉분은 흙무더기와 다를 것이 없다.
봄 가뭄이 심한 모양이다.

떼가 홀딱 벗겨진 전면 외엔, 걱정했던 것만큼 허물어지거나 흘러내리지 않고 그냥 계신다. 다행이다. 지난 설에 성묘하며 고라니가 벗겨 놓은 떼를 대충 모두어 놓았는데, 고라니 놈이 그마저도 또 헤집어 놓았다.
비가 충분하게 내리고 기온이 더 올라가면, 푸른 빛이 눈속임처럼 봉분을 덮을 것도 같은데... 아무리 가물고 아무리 새 잎이 날 만큼 기온이 모자란다고 해도, 마주하는 당장의 모습이 너무 흉하다.
헤집어 놓지만 않으면 묘 마당에 산짐승들이 두런거리고 들락거리는 것도 부모님 심심치 않고 좋을 일일 텐데...
잔을 고이고 담배도 한 대 올리고 곁에 앉아 이쪽저쪽으로 궁리해도 나 혼자 꼼지락거려서 해결할 단계를 넘어섰다. 품을 사서 봉분만이라도 사초를 하거나 아예 둘레석을 두르던지...
딱 이때만 한 번 먹는 국.
원래는 솜털 같은 쑥을 한 줌 뜯어 올 생각이었지만, 부모님 산소는 흉하기 짝이 없으면서 내 목구멍에 넣을 것 챙기는 것이 염치없어 그냥 돌아왔다.
발치로 보이는 옻 순도 잠시 바라만 보다가...
202504192735토
어제(18금)丈人死亡申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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