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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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정적.

by 바람 그리기 2017.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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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기운 마당 한쪽에 앉아 커피를 마십니다.

장미는 봉우리가 터지며 빨간 속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올 처음으로 꽃을 보인 노란색의 양난이 소담 지게 대공에 매달렸습니다.

며칠의 비에, 부쩍 자란 창포의 녹음이 깊습니다.

종일을 발치에서 엉덩이를 비비며 까불던 삼월이가

우리 밖으로 턱을 괴고 달콤한 오수에 빠졌습니다.

바람은 가끔 풍경에 닿았다 고욤나무 잎새를 흔들어 잔잔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머님은 방바닥에 깻잎이 되어 미동도 없고,

각자의 방에 들어앉은 식구들도 기척이 없습니다.

한길 위로 화물차가 지나가는 둔탁한 엔진음이 가끔 대문을 넘어서고,

고욤나무와 빨랫줄에 앉았던 참새들이 마당으로 내려앉아 종종종 뛰어 다닙니다.

 

정적.

도심 한가운데서도 새가 깃드는 오래된 집의 마당.

행복한 정적.

이 행복한 정적 안에 있으면서도 무언가 할 일을 못한 것 같은 아쉬움. 서운함. 쓸쓸함……. 뭐 그딴 감정들이 왜 일렁이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담배 한 대 먹고,

물 한번 시원하게 뿌리고 속옷 빨아 널고.

저녁 전에, 어머니 상처에 붙일 습윤밴드를 사러 나갔다 와야겠습니다.

 

지난 것은 늘 꿈같습니다.

지난 이틀의 외출,

그곳에 누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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