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회 정례모임을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데, 앞서 자리를 함께했던 정가의 전화.
"큰일 났다.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산삼과 함께 있다고 어서 오라고.
그제 술자리에서 오갔던 대화의 원점 회기.
나이 쉰이 넘은 지 세 해나 되고 귀밑머리칼이 허연 놈들이니 각자의 여건과 판단에 따라 제 몫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으나 이거 원…….
상식 안에서 판단하지 못하는 안가의 변함없는 자기합리화의 두런거림에 실망하고, 담배 먹으러 가자고 잡아끌어 밖에 세워놓고는 옆 테이블에 앉아 횡설수설 기별이 없는 정가 놈에 짜증도 나고. 무엇보다 모자라지 않은 취기에 몸이 지치니 존재감 없는 시간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심드렁해서 그냥 슬그머니 집으로.
외상값 갚을 겸 포차에 들러 맥주 한 병 먹고 담배 사러 편의점에 들렀는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
'제 돈 들여서 햄버거 하나 못 사 먹을 사람….'
포차 가는 길에 보았던 수제 햄버거 점은 이미 영업마감을 했고 담배를 사러 들렀던 편의점에는 재고가 없고.
우체국 골목을 건너 다른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가 딸리는 불고기햄버거 기획상품을 사 들고 덜렁덜렁 집에 도착하니, 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국적불명의 과자 두 봉.
측은지심이 동하기는 이쪽이나 저 짝이나 매한가지 인가보다.
저녁 쌀 씻어놓고 마당에 개똥 치우고
새끼 낳을 날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으니 두툼한 헌 잠바를 챙겨 삼월이 집에 더 넣어주고…….
오수에 드신 엄마 옆에서 난로를 쬐며 맛난 담배와 커피.
추워진 날.
한가롭게 책장을 넘기는 과분한 행복.
현실의 절박함에 언 손을 호호 불고 있을 세상의 아빠들에게 염치가 없다.
그래도,
이 추운 날 술에 취해 길거리를 휘청거리지 않는 지금을 칭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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