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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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환승역에서.

by 바람 그리기 202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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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육체를 침대 위에 집어던진다"

-기형도 시 「여행자」에서-

  우봉산 왕봉산 노적봉이 사타구니에서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위로, 흉한 부스럼투성이의 기괴한 이가 제웅처럼 내팽개쳐졌다. 옥양목 홑이불을 수의처럼 둘둘 말고 치미는 나를 부정하자 뜨거운 눈물이 주책맞게 흘렀다. 호박돌을 다지며 시작한 오랜 기억의 집 짓기는 석가래 몇 줄을 채 올리지 못하고 급하게 아침을 맞았다. 사위에 가득한 낯선 정적, 비릿한 고요, 나는 너로 하여 어찌 이토록 서글픈 것인가? 내가 아닐 것 같은 추레한 뒷모습이여... 햇살에 무릎이 잠기기 전, 주섬주섬 우산을 챙겨 도망치듯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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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날은 길고 여기에 닿았으니, 아침에만 선다는 그 골목의 국밥을 먹고 그 산사에 다녀갈까?"
 나에게 있어 장소의 복기란 기억을 지우는 의식이지.
 "쉬이 지울 일도 지워질 일도 지우고 싶은 일도 아니지. 아직은..."


 차창 밖으로 구름은 이렇게 점점 멀어져 간다.

 
 202505170901토
 윤수일-유랑자
 북향의 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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