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 깊숙한 곳으로 / 성 봉 수 ~☆
본문 바로가기
낙서/ㅁ마당

☆~ 바다 깊숙한 곳으로 / 성 봉 수 ~☆

by 바람 그리기 2013. 11. 6.
반응형

 

바다 깊숙한 곳으로

3번 출입구를 빠져나가 도로를 건너면 열매가 아직 여물지 않은 산수유나무가 가리고 선 흡연구역이 있다.

  10층 병동에서 승강기로 내려와 3번 출입구가 있는 본관 병동으로 나서는 2층의 연결 통로를 지나다가 복도 한 편으로 전시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아트테라피> 말 그대로 예술활동을 통한 치료요법.

   정복되지 않은 인류 최악의 질병 앞에 무기력해진 환자들을 위해 병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인듯싶었다. 대략, 오십여 점의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제법 전문가의 솜씨가 묻어나는 것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이 고만고만한 수준의 작품들이었다. 암이라는 절망 앞에서 어쩌면 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흔적이 될지도 모르는 작품을 만들던 모습들을 상상하니 맘이 아려왔다. 천천히 둘러보며, 가장 절망적인 심리가 묘사된 작품과 반대로 가장 희망을 품은 작품 하나씩을 골라보기로했다

 

 

 

   <우리 딸>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 앞에 멈추었다.

   아이는 잘 되었어야 초등학교에 다닐 정도의 모습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한 손으로는 엄마의 손에 매달려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으로 상상이 되었다. (아...어린 딸이 있으니 엄마도 많지 않은 나이일 텐데) 그런 아이를 떠올리며,

용기를 내어 완치의 의지와 희망을 다잡는 환자의 맘이 전해왔다.

   걸음을 몇 발짝 옮겨

 

 

   <바다 깊숙한 곳으로>란 이름의 작품 앞에 멈추어 섰다.

   얼핏 보면, 작살 같은 포획도구로 형상화된 암을 피하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즉, 생의 의지를 더 깊게 다지는 희망적 심리로 이해될 수도 있겠으나 포획물로 이해한 상단의 모습을 바다의 파도로 상상한다면 이보다 더 절망적인 작품은 없었다.

   물 밖은 현실의 삶이요 자신이 지나온 시간이며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다. 헌데, 지금에 돌아보니 이제 것의 현실의 삶과 지나온 시간은 높은 파도가 격랑 치는 고통의 세계에 불과했다. 다시는 나서지 못할 두려움의 세계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자신의 지닌 살점은 모두 떨어져 나가고 거친 비늘만이 들 솟았다.

  불교의 목어의 전설을 마주한듯 했다.

  배를 뒤집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을 용기도 없다.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무작정 외면하고 부정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어둠 속으로 절망 속으로...환자의 극한의 절망감과 포기 앞에 내가 지닌 어떤 감정의 표현들도 나설 수 없었다.

 

   희망과 절망의 심리를 잘 표현한 작품을 하나씩 고르고 난 후, 자연스럽게 판매가격과 작자의 이름에 눈길을 돌렸다.

   이럴 수가... 두 작품이 같은 사람의 것이다. 그러면서, 판매하지 않는 전시용이었다.

   아, 희망과 절망의 구분이 어디에서 나뉘는 것일까?

   분명 환자는 최악과 최상의 양면을 잡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어린 딸을 생각하며 솟던 삶의 희망과 의지도 자신에게 닥친 병마의 현실 앞엔 무기력하게 무너져 절망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작품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생각이 복잡해졌다.

   아이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겨 주는 것? 남기고 싶은 것? 아이가 기억해 달라는 것?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 물론,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고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병마를 이기고 현실로 돌아와 지난 아픔을 회상하는 징표가 되고자 했음으로 말이다.

  두 작품을 번갈아 보며 한 동안을 멈추어 서서 환자가 어느 쪽으로든 맘의 갈피를 잡아 평안을 찾기를 빌었다. 기왕이면, 희망과 긍정의 손을 잡고 병원 문을 나서기를 빌었다.

 

   그 밤, 나 역시도 절망과 희망이 뒤범벅된 몸을 터벅이며 그 앞을 몇 번이나 오고 갔지만, 그로부터 여섯 시간도 지나기 전에 내 사랑하는 사람은 바다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렸다.

   절망과 희망의 어느 편에도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너무도 허무하게.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