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대충 넘기고 점심밥을 지으니 혼곡 해 놓은 쌀이 떨어졌다.
약국에도 들러야 하니, 시장 안 마트로 나선다.
시장 골목으로 접어들고야 장날인 걸 알았다.
'장 구경 좀 하고 들어갈까?' 하다가, 파장 무렵도 아니고 그냥 마트에만 들려 옆구리에 우산을 낀 양손에 장 본 것이 담긴 쓰레기 봉지를 들고 약국 거쳐 새지 않고 돌아왔다.
삼월이 언니 아버지께서 지난가을 하사하신 새 쌀자루를 헐고 보니,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딱 반반이다.

포대의 아구리를 꽁꽁 싸매 완벽하게 차단한 공기 덕에 기가 막히게 숙성됐다.
쌀을 통에 소분하고 사 온 곡물을 섞느라 옷소매를 걷고 휘젓는데,
양 조시를 못 맞춰 휘저을 때마다 통 밖으로 우르르 쏟아진다.
어쩐지, 오늘 아침에 생뚱맞게 붴 바닥을 쓸었다.
붴 바닥도 쓸었겠다, 넘치거나 말거나 일단 휘젓는데.
휘저으며 문득 든 생각,
<관대하다>
나는 내 입에 들어가는 거에 대해 정말 관대하다. 물론 내 입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만 말이다.
지금이야, 늙어 배 째는 추한 모습 되기 싫어 이물질이 씹히면 뱉어내기는 하지만, 예전엔 연자매 돌리듯 그냥 이를 더 싹싹 갈아서 꿀꺽 삼켰다. 머리카락이든 뭐든, 집에서건 밖에서건 그냥 건져내고 먹었다.
내 입에 대한 관대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곰곰 생각하니,
"내삐려 둬! 지가 배고프면 먹것지!"라던 아버님의 호통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기저귀 떼고 코 질질 흘리던 시절부터 듣던 아버님의 그런 호통은, 당신을 무섭고 범접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로 각인시켜 살게 만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는 강한 비위(脾胃)는 다 당신 덕택이었겠다. 지금은 점점 삐그덕거리는 위(胃) 때문에 유감이지만서두 말이다.
그러고 보니,
삼월이 언니는 시아부지 제사상에 지극정성여야 할 분이다.
젊은 내가 차려 내는 것마다 젓가락으로 깨작거리다가 상을 물렸으면 그 꼴을 어찌 보고 살았을꼬?
"참, 생기대로 논다" 푸념은 했겠지만, 때려 쥑일 수도 없었겠고...

저 때는 독거노인이 아니었던지, 괴기 뜬 국이라도 얻어먹었었넷.
식모커피 한잔했더니 배가 빵빵한 디, 지금 오늘 마지막 끼를 먹을까? 워쩔까?
202503041923
Gary Moore-Parisienne Walkways
시장마트/ 귀리(1+1 수입), 찰보리(수입), 찰흑미, 찰현미, 빙아리 콩(1+1), 달걀(30구 행사. 충동), 대파, 두부(행사), 미역(150g), 식모커피, 쇠고기스프(1kg)
다이소/ 국자, 주걱걸이(set), 삼색 네임펜, 유성매직(삼색 set).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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