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돌아가시고 내 방을 아들에게 내줬습니다. 할머니와 함께했던 기억의 잔상이 힘들 것 같아서요.
그리고는 비워 두었던 안방으로 제가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지내오다, 창고로 쓰던 아니 창고가 되어버린 문간방을 정리하고 이사했습니다. 오래전, 할머님 할아버님께서 쓰시다 운명하신 곳입니다. 그 후론 제가 쓰기도 했고 제가 결혼 후에는 아버지께서 당신 살림살이를 넣어두셨던 방입니다. 궁리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첫째는, 아들이 쓰고 있는 예전의 내 방에 내 살림살이가 그냥 그대로 있으니 아들의 생활이 붕 떠 보이는 것이 안 되었습니다. 졸업한 것도 넉 달째이고 직장에 출근한 것이 벌써 반년 가까이나 되어가는데 보기가 안 좋습니다. 무너져 내린 천장 수리할 날만 기다리다 그리되었습니다. 천장 수리도 마쳤으니 작정을 하고 내 짐을 모두 옮겼습니다. 둘째는, 불쌍한 삼월이 언니 때문이었습니다. 이유야, '밤과 낮의 구분이 없는 내 수면 주기 때문에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이라지만 그냥 이대로 지나다간 '평생 안방 살이 한 번 못하고 죽을 사람' 입니다. 벌써 쉰이 넘은 세월. 어, 하다가 억, 할 것이 뻔한 일입니다. 내가 안방을 비우고 건너왔으니 안방을 쓰든 말든 판단은 본인의 몫이고 내 할 일은 했습니다.
어제,
창고가 된 문간방을 치우고 아들 방에서 책꽂이를 옮기고 쓸고 닦고.
오늘은 책을 어느 정도 정리해서 마무리했습니다. 아들 방에서 다 옮겨오지도 못했는데도 책꽂이가 턱없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저자 서명이 없는 것, 내 글이 실리지 않은 것을 추려서 미련 없이 길가에 내놨습니다. 얼추 200권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박스협회 동료들 땡잡았습니다.
연기문학(현, 세종 문학), 논산 문학(은 논산 문인협회 기관지니 지금도 발간이 되겠고), 사비 문학(은 부여 문인협회 기관지인지 확실치 않아서 지금도 발간이 되는지는 모르겠고), 한울 문학(은 부산의 강길환 시형이 만든 건데, 지금은 파계 수사께서 발행인으로 동명의 월간지로 어마어마하게 몸짓을 불려 놓았으니-아마 신인 등단자가 기 백명은 넘을 듯- 소유권이 이전된 건지 폐간 후 새로 생긴 건지 어떤지 모르겠고), 문예사조(는 존경하는 김창직 선생님께서 주간으로 발행해오다가 돌아가신 후 소유권은 넘어갔지만 계속 발간은 되고 있는데, 예전처럼 실력 있는 신인들을 배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고)창간호.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엽서 문학 창간호. 몇 해 전 폐간 되었으니 더 반가웠습니다.
책을 정리하다가 책 사이에 숨어있던 사진도 찾았습니다.
어리고 이쁜 아들이 할머니와 유치원 졸업식을 하고 있습니다. 지상렬 같은 내가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습니다. 이제는 모두 성인 된 조카들의 모습. 외할아버지 팔순 생신 때의 모습입니다. 아버님은 그 몇 달 후에 운명하셨습니다. 환하게 웃으시던 이쁜 우리 큰 누님도 계십니다. 같은 하늘 아래에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내방 창문 밖으로 찍었던 사진에는 어머님이 가꾸시던 화초가 가득합니다. 저 많던 화초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어제 오늘.
방을 닦고 또 닦아도 걸레가 연탄 보자기입니다. 닦고 또 닦아도 발바닥에 지근지근 흙이 달라붙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평생 아끼고 쓸고 닦은 것이 무슨 소용인가. 당신 와병한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변해버렸구나. 불과 몇 년 사이에 평생의 공은 사라지고 이렇게 되었구나.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될 수가 있는 거구나….)
그런 마음에, '책을 버리기를 잘했다. 앞으로는 그때그때 버려야겠다. 언제 죽을 줄 모르는 인생, 나 죽으면 이 무거운 짐들이 정말 처치 곤란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죽은 후, 내 책을 다시는 출간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긴 그 스님 생각도 났고요.
내일은 벽에 못 박고 안방 화장대 위에 계신 어머니 영정 사진 모셔다 걸면 정리가 다 되는 것 같습니다.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침까지 출판사에 정리해서 넘겨줄 것이 있는데. 서둘러야겠습니다.
방을 쓸고 닦으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객사를 하지 않는다면, 내 현생의 숨이 멎을 곳이 여기일 텐데... 투덜거리지 말자. 내 들어갈 관을 짜는 신성한 일이지 않은가'
새로 건 시계의 초침이 유난히 크게 울리는 밤입니다.
20190415292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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