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잡고 있는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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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내가 잡고 있는 똥

by 바람 그리기 2022.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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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 삶아 밥 찌끄래기 처치하고 뉴스 보다가 깜빡 든 잠.
 오후에 비 예보가 있으니 오전 중에 부모님 선영 물골 날 곳은 없는지 살피러 다녀오려고 간만에 챙긴 아침이었는데, '이슬이나 마르걸랑 가야지' 생각한 게 남들 일어날 시간에 그만 잠들어버렸다. 밤새 서재 책상에서 절구질하던 몸이 이끈 본능이었지만, 모처럼 꿀처럼 잤다.
 
 세수하고 용변 보고 '집 비설거지 좀 대충 하고 나가야지...' 꼼지락거리는데, 앵두나무 가지에 바람종 소리가 얹히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글렀네...'
 어차피 허리 상태도 개운치 않고, 한식 이후 걱정할 만큼 이렇다 하게 큰비가 온 적 없으니 반반의 심정으로 그냥 주저앉는다.
 가끔 들이치는 비를 맞으며 오래된 집 마당 한 편 처마 아래에 커피를 타고 앉아, 나는 나대로 삼월이는 삼월이대로 서로의 생각 속에서 서로의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삼월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점심을 먹어야겠는데, 어제 밥솥 씻으며 덜어 놓았던 묵은 밥은 아침 라면에 처리했으니 탄수화물의 부재. 그렇다고 밥 말리는 작업을 미리 앞당길 비효율은 없고...
 냉장고를 열고 기웃거려 차린 성찬.

 

 일요일, 아드님 생신상에 올렸던 케이크를 삼월이 언니께 배급받은 것. 어차피 먹어 치워야겠으니 잘 되었다. 이런 종류의 먹거리에 뒤따르는 생목 오름. 어쩔 수 없는 촌놈 식성을 잘 알고 있으니, 역시 배급받은 아삭이 고추 하나를 강된장에 곁들여 경건하게 좌정했다.
 아이고, 장에 찍은 아삭이 고추가 의미 없도록 먹는 내내 생목이 올라 죽는 줄 알았다. 촌놈 ㅋㅋㅋ.

 

  내친김에 냉장고 점고를 해서 1%쯤 남은 섬유질로 간신히 존재를 버티고 있는 스무디 직전의 수박과, 돌덩이에 얼음 곰팡이가 핀 치약 맛의 아이스크림(케이크는 누구 생일에 올렸던 거였지?)을 간택했다.

 맛도 멋도 없이 비에 넘긴 미각으로 쩝쩝 거리는데, 앉은뱅이 다용도 상 아래로 보이는 눈에 익은 통.

 

 어머니 혈당 재고 인슐린 주사 놓아드릴 때 쓰던 소독용 알콜 솜 통.
 '2017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당 고욤나무에 고욤 열리던 때였으니 이제 5년째 접어들었네...'
 어쩌다 가끔 내가 쓰기는 했어도, 자세히 보니 알코올은 모두 증발하고 솜에 거뭇거뭇 곰팡이까지 앉아있다.
 일부러 아낀 것은 아니지만, 쓸모없는 똥 되어버렸다.
 그제야 번뜩 정신 차리고 중얼거렸다.
 '그려, 아낄 것 없이 씻고 나서 새로 또 붙이면 되는 일이지. 파스든 내 몸이든 저리되기 전에...'
 파스를 있는 대로 뜯어 허리, 양 무릎, 어깨에 아낌없이 붙였다. 찬 것, 뜨거운 것, 허브, 한방... 종류별로 가릴 것 없이 붙였으니, 부교감신경이든 교감신경이든 교통정리 하느라 애 좀 먹겠다.



 똥 되고 있는 것이 또 무엇일까?
 물건이든, 사람이든, 기억이든, 시간이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인연이든...
 똥 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내가 미련하게, 어쩌면 억지스럽게 잡고 있는 게 무엇일까?
 어쩌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이미 똥이 되어 있는 나를 인식하지 못한 채...

 

★~詩와 音樂~★ [시집 『바람 그리기』] 나의 팬터마임(pantomime) / 성봉수

 나의 팬터마임 pantomime/ 성봉수  저기는 여기를 바라보던  내가 있던 곳  여기는 저기에서 바라보던  내가 있는 곳  저 사내의 사랑과  요 사내의 사랑과  저 사내의 이별과  요 사내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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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에 날 개인다니 선영에 다녀오든...
 아차, 오후 행사가 몇 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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