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가정을 꾸리고 맨 처음 장만하는 살림살이가 카메라이던 시절이 있었죠. 결혼을 하고 2세가 태어나면서,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기록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가 대부분 일 겁니다. 지금에야 스마트폰이 워낙 잘 나오다 보니 마니아가 아닌 다음에야 고가의 카메라를 살 필요가 없는 세대가 되었지만요.
내일이 셋째 졸업식입니다.
핸드폰이 오래된 기종이라서 카메라의 성능이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물론 요즘 나오는 신상에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수납장에서, 먼지가 쌓인 필름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2년 전 둘째 졸업식 후 그대로 넣어두었는데요, 배터리가 방전이 돼서 들어있는 필름을 되감기가 안되더군요. 이웃 문구점에 들러 배터리를 사 교체하고, 언제 찍었는지도 기억이 없는 현상하지 않은 필름 한 통을 더 들고 스튜디오를 찾았습니다.
"바로는 안 됐고요, 한 2주 걸립니다."
'예? 2주요? 사장님 바뀌셨어요?'
"아니요. 사장님은 그대로인데, 필름 카메라 수요가 워낙 없어서 기계를 못 돌립니다. 한 주에 많아야 3통 정도 인화가 들어오니 용제가 썩어서 감당을 못해요"
이 스튜디오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즉석 현상ᆞ인화기를 들여놓고, 카메라도 대여해주면서 한 시대를 선도하는 주인공이었죠. 그래서 시내 한가운데에 커다란 점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요, 필름을 한 통 사들고 나오며 확인하니, 같은 공간을 세 곳으로 나누고 각기 다른 점포가 입주해 있더라고요.
실내에서 라이트를 사용하지 않으려면 아사 300은 되어야겠고, 졸업식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촬영할 시간이 점심 무렵이니, 깔끔한 후지필름을 사려고 했더니 코닥 필름밖엔 없네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제 카메라가 필름을 사용은 한다 해도 엄밀히 따지면 완전한 기계식 아날로그는 아닙니다. 화소 인식을 필름에 할 뿐이지, 작동 방법은 요즘의 디지털카메라와 같이 다양한 프로그램이 내장된 것이거든요. 한마디로, 디지털카메라와 기계식 카메라의 중간형 단계라 생각하면 되겠네요.
필름을 구하기도, 촬영 후 인화 ᆞ현상하는 것도 여의치 않고…. 아무래도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 장만해야겠는데요, 기왕 사는 거 멋진 놈을 장만하고 싶은데…. 어느세월에 책 팔아서 카메라를 사나!
새것이 옛 것 위에 쌓여 오늘을 만듭니다.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마주하니, 글을 쓰는 아날로그적 삶의 내 모습이 투영됩니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버릴 수도 없고 사용하기도 불편한 필름 카메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니콘.
그놈 참 품격있게 잘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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