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매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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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바람 매운 날.

by 바람 그리기 2017.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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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것 좀 봐. 물도 안 얼었어. 바람이 좀 불어서 그렇지, 날씨는 푹햐"라는 거짓말로 병원으로 나서는 길을 재촉했지만, 내 손이 시린 것을 보니 춥긴 추운 날이다.

세종시가 되면서 받은 가시적인 혜택, "염화나트륨"의 아낌없는 살포. 귓불이 얼얼하도록 바람이 에어도 그늘진 구석을 제외하곤 대로변에서는 자취를 감춘 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느릿느릿 걷는데,

'어라? 크을 났네~~~'

핸드폰이 안 보인다.

오던 길을 되짚어 병원 비상계단을 거의 다 올랐는데,

'어라! 요것 봐라?'

좀 전까지 흔적이 없던 핸드폰이 잠바 주머니에서 잡힌다. 이런……. 이러니까, 노땅들은 일 시키면 안돼. 고려장이 현명하긴 했어. 쉰 넘으면, 단순 노동 외엔 일 시키면 안된다니까. 청년 실업도 심각한 마당에…….

토요일 버스표 예매하고, 대목 넘긴 재래시장의 썰렁한 길을 택해 담배 한 대 물고 터벅터벅. 여기저기 문 닫은 상점들. 푸성귀를 내고 앉은 좌판의 노파 몇 분.

지갑에 채워드리고 남은 어머니 설 용채를 통장에 넣고, 마트 들러 발효유 만들 우유와 떨어진 올리브유 한 병 사 들고 집으로.

전자레인지에 우유 돌려 어머니 방 돌침대 이불 속에 넣어두고, 어제 안면도 동서가 덜어준 자연 굴 씻어 소금에 버무려 병에 담아 부엌 한쪽으로 뜨도록 밀쳐두고 다시 병원으로.

워낙 굴을 좋아하는 데다 보기 힘든 자연산 굴이니 내 입에 톡 털어 넣으면 될 양이지만, 어머니 입맛 돋구게 해드리려 굴젓을 담기로.

 

기온이 차가운 대신, 청량한 공기.

오는 내내 숨을 길게 들이켰다. 담배에 찌든 폐포가 조금은 정화가 되었을까?

 

섶 골 할머님댁에 가던 길에 늘 불던 맞바람. 북풍.

꼭 그때의 바람이 분다.

류성룡 종가를 휘도는 낙동강 변의 바람 같기도 하고….

 

5년 차의 첫날.

어머니의 허리춤을 잡고 맞은 첫 월요일이 새롭다. 그 새로움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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