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식당이 쉬는 날.
작년까지는 삼월이 언니에게 도시락을 배달시키다가, 올핸 집 밥 말고 죽으로 한 그릇 잡수시게 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어 그냥 집을 나섰는데….
투석이 시작되고 죽 집을 찾으니 문 연 곳이 없다. 빨라도 한 시 반까지는 영업하려니 했더니. 하긴, 요즘 자영업자들이 자기 몸 상해가며 사람 노릇 포기하면서까지 죽을 둥 살 둥 매달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래시장 골목을 기웃거려봐도 팥죽 호박죽밖엔 보이지 않아. 음식을 가려 드려야 하니 갔던 길을 되짚어 병원에서 준비한 250g 즉석 죽을 여느 날처럼 옥신각신 끝에 비우시게 했네.
배가 고프다.
김밥 한 덩이 사 먹을까? 생각하다, 어차피 볼일도 있고 하니 겸사겸사 집으로 와 기름질 하는 삼월이 언니 뒤편에 앉아 꾸역꾸역 밥을 먹는데….
"어디야?"
"그럼 길 건너로 나와"
"응, 그려, 지금"
겉옷을 다시 입고 길을 건너려 집 앞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
"봉수야!"
정차를 하고 기다리던 형이 신호등 바뀔 때 바라고 서 있는 내가 답답했던지, 상자를 들고 무단횡단을 해서 저만치서 걸어오며 나를 부른다.
나잇값? 어른 노릇? 품위유지?
설 덕담도 건네지 못했는데 무거운 상자를 직접들도 집 앞까지 오신 띠동갑 형.
챙겨주시는 맘이야 고마운데, 염치가 없네.
내 생에 한 번이라도 값을 하는 날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오늘 노동을 마친,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람이 종일 맵다.
잘 가거라,
병신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