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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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백수건달.

by 바람 그리기 2018.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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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은 어차피 데워놓아야 하는 거고. 

불을 켜 놓고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릇에 밥을 대충 뜨고 뜨거운 물을 채워놓았다. 

 

물을 따라내고, 데운 된장을 덜어 비빈다. 

냉장고를 열어 첫 번째 눈에 띈 반찬 통을 꺼낸다. 

밥알이 잘 불었다. 

뚜껑을 연 반찬 통 안에 담긴 것, 풀도 죽지 않은 파김치. 

한 뿌리가 다 쫓아온다. 

가위를 가져다 가혹하게 조졌다. 

그래도 입안에 들어오면 양파껍질을 씹는 거 만큼 질기다. 

솟은 이를 탓 할 일이지…. 대충 우물거려 넘기고, 두 봉지에 담긴 약 한 주먹을 나눠 먹고.

 

삼월이는 여전히 단식 중. 

꽃을 담는 나를 한심한 듯 흘겨보다 생각에 잠겨있다. 

무슨 생각을 할까? 

식모 커피를 타서 앉았는데, 쪼르르 달려와 발아래에 눕는다. 

지청구만 먹으면서도 쥔장이라고….

 

유독 벌레가 많은 해. 

장미 잎도 앵두 잎도 감나무 잎도…. 모두 갉아 먹었다. 

고추며 배추며 팔아먹는 신세이니, 갈걷이가 어떨지 지레 걱정이다. 

 

덥다. 

가끔 바람이 불어도 바람 종이 울지 않는다. 

아무래도 추를 매단 끈이 엉킨 모양이야. 

끈을 풀어 주고, 담배에 남은 커피 마시고.

돈 안 되는 일이라도 컴을 잡고 앉아야겠다. 

 

내 있는 지금이 그자리이다.... 여기지만, 

좋은 사람과 함께 산사의 청아한 그늘 속을 느리게 걷고 싶은 날.

세상은 내 밖에 있고,

내 밖에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의 존재 유무에 대한 의구.

나를 부숴 아무리 바다에 던진들, 물이 역류하거나 넘치는 일은 없다.

내 힘으론 움직일 수 없이 굳어진 보편의 진리.

그 앞에 머무는 일은 늘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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