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두화 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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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불두화 핀 날.

by 바람 그리기 2020.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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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며칠,
 마음이 영 심란하고 불편한데 딱히 잡히는 꼬투리가 없다.
 어쩌면 뻔한 꼬투리를 회피하는 무의식이 불편함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마음 한쪽을 계속 거북하게 만들던 <선영>에 대한 막연함으로 집을 나섰다.
 마침 어버이날이기도 하고.



 영산홍이 기다리지 않고 부모님 앞에서만 피었다 졌다.
 그래도 풍뎅이 녀석이 코를 박고 있는 흰색의 늦은 영산홍 한주 덕분에 서운함을 덜었다.

 좋아하시던 커피를 올리고,
 낙엽을 긁어내며 물골 날 곳은 없는지 삽을 들고 살피다 보니 장화 위가 온통 송아가루다.
 신고 가기를 잘했다.



 윗대 어른들 묘소 살피러 올라가다 보니,
 증조부모님 묘소 입구 숲속에 불두화가 피어 있다.
 나무 밑동을 보니 적어도 한두 해를 자란 나무는 아닌데 왜 여태 몰랐는지 의아하다.
 아버님이 심으셨다 하기엔 수령이 못 미치고...
 몇 해를 혼자만 몰래 피다가 딱 들킨듯싶다.
 하긴,
 몇 주일 전부터 건너 채 화장실에 세 개 꽂혀 있는 칫솔 중, 어느 것이 내 것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 어쩌면 그 전에 보았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건, 잔디가 살지 못하고 흉물스럽게 무너져 내려가는 묘소를 그렇게라도 지켜주고 있었으니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집으로 돌아와 화단의 불두화를 살피니,
 아침까지 풋내나던 꽃잎 한쪽으로 말간 빛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작년엔 한 송이도 보여주지 않더니 올해는 제법 많이 맺혔다.
 사나흘 사이로 활짝 피겠지.


 산에서 내려와 개울에 삽과 손을 닦고 담배를 먹으며 물소리와 새소리와 바람 소리에 몸을 맡기고 신록의 그늘 아래 한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푸르름….> 망념이 틈을 비집지 못하는 참 좋은 빛이다.
 순간이긴 하였어도...




 

 202005083115금

 영산홍.
 제 몸에 붙어 있던 흙의 기력이 다했는지 키도 자라지 않고 벌지도 않고 삐들 삐들 불쌍하다.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맘이 속상하다가 손을 꼽아보니 식재한 것이 2년 전 봄이다.
 2년이구나.

 2년 사이에 나는 정수리까지 머리가 세고 이빨이 빠지고….
 오랜 이야기가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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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서 내려와 전동 성식이네 식당 들러 추어탕 포장해서 처가.
 얼굴 뵌 지 오래지만, 코로나도 게름 찍 하고 빠진 앞니도 그렇고...
 길가로 내려온 처제 편에 꽃 사다 달아드리라며 건네주고 되짚어 돌아왔다.
 귀가 근질거리네.
 "그래, 그렇게 놀면 어떡햐? 돈도 못 벌면서 이런 걸 왜 사와!"

 *옆 산에서 진홍 영산홍 가지 꺾어다가 꺾꽂이 해 놓고 왔는데, 마침 밤부터 비가 왔으니 뿌리가 내렸으면 좋겠다.

 *90집 교정 본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가지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일정을 바꿔서라도 참석했을 텐데, 맘도 몸도 심란하고.
 그제, 장 형에게 "여태 해 놓은 게 뭐냐!"는 소리를 듣고 보니 헛지랄할 일이 무엔가라는 생각도 들고.
 물론, 나를 꼬집어 한 얘기는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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