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瑞雪) 내리는 세밑의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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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안방

서설(瑞雪) 내리는 세밑의 밤에.

by 바람 그리기 2025.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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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차례상 장을 보고 돌아오니 허기.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통의 그릇들. 달그락거리기는 귀찮고, 구정물에서 건진 다이소 냄비를 훠이 헹궈 라면을 삶는다.
 "이런 날은 라면에 쐬주 한 잔 곁들이면 쵝오지!"
 -라고, 되뇌는 건 라면으로 때우는 저녁밥을, 쐬주를 매개(媒介)로 합리화하려는 자의의 핑계임이 다분하다.
 삼월이 언니 장 보는 동안 매장을 어슬렁거리다가 눈에 들어온 쐬주.


 한눈에 봐도 맛있게 생겼는데, 들었다 놨다 몇 번 하다가 그냥 왔더니 그 잔상이 남은 탓도 있겠다.
 사다 놓은 쐬주가 다 떨어진 줄 알았더니, 부엌 바닥에 먼지 뒤집어쓴 놈이 한 병 있다. 빨간 뚜껑 이슬이를 먹다 보니 눈에 두지 않고 지냈다. 착한 놈이다.
 

 착하니 싱겁다.
 그래서 반주로 반병만 먹으려던 것을 다 비웠다.
 해 바뀌기 전에 묵은 술은 없애는 것이 옳다(-겠지? ㅋㅋㅋ)
 대문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외출했던 아이들이 들어오나보다.
 이윽고 삼월이 언니께서 빵 세 조각을 눈썹에 마초아 들고 오셨다.
 짐치를 얹어 단짠을 만끽했다.

 그리고,
 변함없이 그 자리에 폭 고꾸라졌다가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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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변 보러 건너채 화장실 건너가는데, 마당에 눈이 쌓였다.
 용변 보고 건너오며 식탁 아래 누워 있는 삼월이 대가리를 한번 쓸어줬다.
 (왜 방에 못 들어가고 쫒겨난 게야?)
 "탁탁탁탁" 꼬리풍차로 바닥을 때리며 화답한다.

 안채로 건너오기 전 마당에 내려서니, 그냥 쌓인 줄만 알았던 눈이 펑펑 오고 계신다.
 명절 끝까지 눈 예보가 있던데, 설에 맞춰 성묘를 다녀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커피를 타 서재로 들어왔다.


 "13.7℃"
 이 정도면 추위를 느껴야 정상인데 하나도 안 춥다.
 열량 높은 음식과 약을 먹고 새는 곳 없이 축적되도록 배터리 충전하듯 휴면 같은 잠에 들었다가 깨났으니 그런가보다.
 역시, 배가 빵빵해야 등이 펴지는 것은 진리다.
 올겨울은 묶어 매달아 놓은 서재 커튼을 한 번도 풀지 않았는데, 계속 이렇게 봄을 맞을 듯싶다. 아마도...

 조화(造化)가 된 무취의 배부른 그리움은 놓아버리고 울안에 혼자 앉아 보내는 겨울.
 쓸쓸하기는 하여도,  내게로 돌아서는 깔끔한 일이다.

 

★~詩와 音樂~★ [시집 『너의 끈』] 다시, 겨울로 / 성봉수

다시, 겨울로/ 성봉수 가자. 고독아 그리움아 지친 사랑 같은, 내 모든 가난아 눈발 속에서 강아지처럼 깡충거리는 아이들의 웃음. 보이거든, 먼 웃음보다 나은 뜨거운 눈물이 있는 곳 운명 같은

sbs150127.tistory.com

 

 
 甲辰年丁丑月丁酉日(陰12.29)0513화
 瑞雪 나리는 세밑의 霧刻窟에서
 송창식 & 윤수일-밤눈 mix 타인

 ⓒ 겨울로 가는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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