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알 놀다들 오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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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사랑방

자알 놀다들 오셔.

by 바람 그리기 2024.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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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아버지께 호롱불 들려 앞세우고 동네 어귀 주막에서 읍내 1정 목 기생집까지 퇴근 후 종적 묘연한 서방님을 찾아 나서는 것이 일상이었던 할머님은, 그럴 때마다 "입에 술을 대면 그 입을 찢어 놓겠노라"고 앞장선 아들을 훈계시키셨다는데. 그 아들이 내 동생, 그러니까 막내딸을 낳은 후이니 마흔이 다 되고부터 술을 배우고 늦바람에 밤새는 줄 모르도록, 대작하는 누구도 슬쩍 도망가지 않으면 못 버티는 두주불사가 되셨단다. 밤새 자란 까칠한 수염을 외동아들 얼굴에 비비며 품 안에서 앙탈 부리는 내게 껄껄껄 웃으실 때마다 풍기던 역부 퇴근길 해장술의 아주 복잡하던 냄새. 어느 해인가, 혈변에 황달까지 와서 소식을 들은 일가친척들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는데, 확실치 않으나 약탕기가 유용하던 무렵의 집안 식구 중 병중 이력을 기억하는 것은 그때뿐이니, "그때였겠구나" 예총 회의 다녀와, 라면 하나 삶아 우물우물 넘기고 상도 발아래 밀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또 개처럼 픽 쓰러져 잠들었다가 눈 뜬 자시 무렵에 생각나는 것이다. 약봉지 낱개마다 날짜를 적어 둔 것은, 절대 거르지 않고 먹겠다는 내 의지의 다짐이었고 그 다짐만큼 죽으로 연명하는 일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겠다고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저녁 약은 먹었나?" 오늘치 아침 저녁 약을 꺼내 빈 어항 앞에 잘 보이도록 올려놓고 그중 아침 약은 먹었으니 남아 있어야 할 저녁 약이 안 보인다. "먹었을 리가 없는데..." 쓰레기 더미처럼 쌓인 책들 사이에 선풍기 바람에 날아간 약을 찾았다. 그리고 새벽 한 시 반이 지나서야 챙겨 먹고 활짝 열려있는 부엌문을 닫고 들어왔다. 개처럼 쓰러져 한겨울 마당개처럼 잔뜩 웅크리고 잠들었을 그 사이 밥상, 라면 삶아 먹은 냄비 옆에 자두 세 알을 귀신이 가져다 놓고 갔다. 과도로 조심조심 베어 먹으며 "진인사대천명'이라는데, 아무리 병약이라도 정성을 들여 먹어야  얼른 나을 것 아녀!" 생각하다가, 내 어린 시절 약 첩지로 뚜껑으로 둘러 감싼 약탕기를 숯 화로 위에 올려놓고 "아가, 숯 안 날리게 여기를 살살 부치고 있어!"라던 어머님 목소리가 생시처럼 들려왔던 것이다. 누구의 보약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일가친척을 걱정하게 했던 아버님의 혈변과 황달의 병환에 대한 기억이 약탕기 앞에 쪼그려 앉아 계시던 젊은 어머님의 모습을 불러낸 것이었다.
 마당 골목 담벼락의 나팔꽃은 오늘도 한결같이 동쪽으로만 고개를 들고 피어 있다
 

선풍기야, 밤새 고생했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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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땅 어디 골짜구나 해변이나, 타국 멀리 이국 어디로 더위 피해 가신 분들.
 돌아오는 날까지 그저, 행복하시길.

 

 
 202408040623일
 경음악-진주조개잡이
 큰애 귀빠진 날./ 문협 최사무처장 통화./  물리치료./ 큰애 아이스크림 케이크./ 예총이사회(14:00~18:00)./ 이광수 회장님 통화.

 -by, ⓒ 霧刻窟 浪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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