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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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사랑방

잘 살아 있습니다.

by 바람 그리기 2023.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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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좋은 술 한 잔 먹고 싶어졌습니다.
 푼푼한 글 한 편 써 보내느라 이틀 동안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기가 다 빨려 나간 느낌입니다.
 그래서 보혈주 한 잔 내게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집 앞 편의점 쇼케이스 앞에 쭈그려 앉아 기웃거리다가,
 "앉은뱅이 술"을 모셔 왔습니다.
 달짝지근한 맛, 그래서 입에서 받는 대로 먹다 보면 취해 일어서지 못한다는 "한산 소곡주".
 예전엔 많이 먹어봤던 술인데요,
 이런 상표로 나온 제품은 처음 먹어봅니다.


 예전 먹던 것보다 소곡주 특유의 단맛은 거의 없고요, 그렇다고 누룩 냄새가 깊게 나는 것도 아니고... 돈값을 못 하고 입에서도 속에서도 받지 않아 먹어 치우느라 혼났습니다. 마지막엔 늘 맥주 한 캔으로 입가심하는 버릇이 있는데요, 그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중간에 몇 번을 '그만 먹을까?' 고민했을 정도니까요.
 잡아 놓은 꼬투리를 마무리 하고 싶은 시가 웬만큼 있는데요, 이렇게 기력이 달리니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가출했던 삼월이 종ㄴ이 며칠 전 슬그머니 기어들어 왔습니다.
 기어들어 오며 쥔장 여름 원피스를 한 벌 사 왔는데요, 아, 이 삼월이 ㄴ은 소형견도 아니고 중형견도 아니라서 역시나 기성으로 나오는 옷이 맞을 턱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가리다가 씌워놨는데요, 그 꼴을 보고 있자니 꼭 농장 햇볕 가림모자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이ㄴ아! 너도 니 언니 따라 호주 목장 가서 딸기나 따!'



 조용필의 음악을 들으며 생각합니다.
 '그래, 이때도 살았는 걸...'

 바람종도 잠자는 깊은 밤.
 잉여 인간은 이렇게 잘 살아 있습니다.



 
 202304082734토
 조용필, 개봉수, 미소라 히바리 MIX 내 입술에 그대 눈물, 미움인지 그리움인지, 북극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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