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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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첫 커피.

by 바람 그리기 2020.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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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월이가 자꾸 삐들삐들 말라간다.

 여름 나느라 힘이 부친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뭔가 찜찜하다.

 기름진 냄새가 안 나면 통 사료에 입을 대지 않아 그런 것 같긴 한데,

 혹시 몰라 우산을 쓰고 나가 구충제를 사 왔다.

 

 돌아오는 길,

 중년의 마른 사내가 박스로 비를 피하며 스쳐간다.

 (이 흔한 세상에...)

 방향이 같으니 같은 노정까지라도 우산을 함께 쓰자고 해야 하나?

 생각이 입에 닿기도 전에 서둘러 멀어진다.


 

 별 것 아닌 것에 머뭇거리는 나를 되돌아보며 읊조렸다.

 '나도 별 수 없이 세상 흐름에 순응하며 그저 그렇게 살고 있구나...'

 

 

 

 책상 앞의 usb선풍기를 바꿨다.

 어제, 바깥채 지붕 누수되는 곳에 껌을 붙여 놓으려고 빈 pet병을 찾아 재활용 쓰레기 모아 놓은 것을 뒤적이다가 발견했다. 

 

 퇴근한 삼월이 언니 왈,

 "셋째가 사무실 책상에서 쓰라고 준 건데 안 쓰고 놓아뒀더니 아이들이 버렸다. 버린 것을 다시 주워 놓고 다시 버리기를 몇 번. 이번엔 그냥 버리기로 맘먹고 내놨다"는

 그것을 내가 다시 주워 들고 왔다.

 "인형도 있는데?"

 삼월이 언니가 쓰레기 모아 놓은 곳에 가서 때가 고질 거리는 '키티'를 주워다 준다. 그러면서 내 뒤통수에 뱉는다. "쓰는 사람이 닦아서 써야지!"

 그래서 오늘 샤워하러 나가며 모시고 가서 닦아 올려놓았다. 그런데, 책장 위 컵 속에 들어앉은 키티는 또 파업 중이다.

 

 

 첫 커피를 먹는다.

 삼월이 언니가 어디서 얻어다 쟁여 놓은 가루 커피.

 맛이라고는 쓴 맛뿐이다.

 익모초 내린 물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징그럽게 쓰다.

 

 쓰거나 말거나,

 차를 맛으로 먹으랴만...


 내일은 조부님 기일.

 퇴근하고 제수 흥정하러 가자고 하더니, 분명 퇴근한 것 같은데 기척이 없다.

 

 아,

 라면 한 끼로 채운 속이 다 비었는지 허기가 진다.


 흠...

 내일이 기일인 것을 왜 기척이 없는지 여태 나 혼자 몸 달아했네.

 

 비 엄청온다.

 

 

 

  배구퍼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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