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농사를 생각하고 자연의 자연스러운 섭리를 생각하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만,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교미 중인 호랑이 거시기가 얼 정도로 제일 추워야 하는 날"인 동지가 지난 지 며칠이지만,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린다.
눈발이 안경에 척척 달라붙게 몰아치지 않을 정도라면 가능한 한 걸어서 모시는 병원 나들이. 하지만 비에는 도리가 없다. 해서 차로 모시고 온 후, 병아리 오줌만큼 드린 점심에 "많아, 배불러" 타령.
시술이 시작되고 안정되시는 것을 기다렸다. 일층 은행 앞 처마 아래서 담배를 먹는데…….
길 건너에 우체부 아저씨.
녹색 형광 우의로 비를 피하며 고생이다.
녹색 형광 우의.
내 고물차 안에도 있는 녹색 형광 우의.
그때, ○○시 업장의 주방 아줌마.
내가 그곳에 머문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을까?
커다란 비닐봉지에 든 뭔가를 들고 퇴근하려는 나를 급하게 쫓아온다.
"○○님, 이거 가져가셔."
곤란한 일이다.
식자재 창고 근처였으니 보안 카메라가 상시 녹화되고 있는 곳. 아차 하면 오해사기 딱 좋은 상황이다. 내용물이 무엇인지 물을 겨를도 없이 무조건 사양의 손사래를 쳤지만, 소용없다.
'아이고 여사 님, 이게 뭔지는 몰라도 CCTV가 다 보고 있는데 괜스레 오해사기 싫어. 다른 분 드려요'
"왜? 보면 어때서? 내 것 내가 주는데 누가 뭐래? 창고에 그냥 둬 봤자 엄한 사람이 가져가요. ○○님이 두고 써요"
○○시 미화원에게 지급된 공식 우의.
내가 그 업장에 몸담기 훨씬 전에,
안면이 있던 미화원이 새벽 근무를 마치고 가는 길에 본인의 우산과 바꾸어 갔다는.
오다가다 만나는 많은 사람 중에 왜 내게 그 우의를 챙겨주었을까?
생각하니 비단 우의뿐이겠나!
나와 관계된 많은 이들이 내게 베풀고자 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교감에 너그러운 걸까?
나만 모르는 무슨 털이라도 박혀 있는 걸까?
'측은의 털?'
'불쌍의 털?'
'동정의 털?'
'털털…….'
아니라면, 앞섰던 어떤 연에 내게서 베풂을 받았음인가? 아니지,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과 자비로 내게 받은 업장을 덮고자 함일 수도 있겠다.
에이…. 모르겠다.
올라가서 어머니 혈압 한 번 더 확인하고,
집에 가서 어제 할머니 기제사 모신 뒤처리하고 우체국 들러 세금 내고 책 발송하고….
쩝, 시간에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네.
'낙서 > ┖ 끽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랑이는 새끼도 호랑이. (0) | 2016.12.29 |
---|---|
아침 인사. (0) | 2016.12.29 |
성탄일 유감. (0) | 2016.12.25 |
막차에 오르며. (0) | 2016.12.24 |
쓰레기 집하장의 꿀통. (0) | 2016.12.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