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에 줄 긋기.
본문 바로가기
낙서/ㅁ마당

호박에 줄 긋기.

by 바람 그리기 2014. 7. 8.
반응형

 

호박에 줄 긋기.

 

며칠 전에 사다 놓은 수박을 잡지를 않는다.

"야 이놈아, 먹을 거 없어서 껄떡거리지 말고 엄마한테 수박이라도 잘라달라 햐"

같은 값이면 덩어리가 큰놈을 고르고 싶었지만, "이건 껍질만 두껍지 실속 없어요. 제가 골라주는 것으로 가져가요. 먹어봐서 알아요." 망태기에 담아 들고 오기가 걸쩍지근할 만큼 다른 것에 비해 작았던 크기.

배를 갈라보니 진국이다.

내 여태 이렇게 껍질이 얇은 수박은 보지를 못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유치원 아이가 벗겨 놓은 사과껍질만 하다.

 

수박을 우걱거리며 티브이를 봤다.

지난 지방선거에 대한 후속 보도들.

'참, 엄마. ㅇㅇ 이 의원 당선됐슈'

"누구? 아…. 그 살살이? 어떻게 그리됐어? 잘됐네"

'그놈이 투자한 시간이 몇 년인데요. 우리 어릴 적부터 몰방했잖아요. 저번에도 나왔다가 떨어지고….'

"하긴 걔가 약기가 보통이 아니지. 마누라도 잘 얻었다며!"

'아, 예.'

 

그가 반생을 공을들이고 투자한 성취에 대한 열정. 충분히 인정하고, 때로는 부러워하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이 못나 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우연하게 들른 그의 SNS의 글에서 이전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존경하던 닥그네의 반대편에 서서 당선이 된 모습을 보았다. 그런 포스팅을 버젓이 공개해 놓고 이번엔 자신을 공천해준. 해서, 반생을 걸어온 목표의 1차 성취를 달성하게 해준 소속정당의 찬양에 열성이다.

 

허허

그냥 웃음만 나온다.

평소의 성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의 방에 축하와 격려의 문구를 남겨 놓은 지인들의 모습 앞에서도 매한가지다.

어차피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었다면, 적어도 사상과 이념이 다른 지난 시절의 포스팅은 잠가 놓는 것이 예의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다분히 의도된 행동이라면 그 친구다운 행동이긴 하지만 말이다.

 

난 적어도 술잔을 마주 잡은 자리에서는 딴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친구는 술잔을 잡고 마주한 관계에서도 얼마나 많은 셈을 머릿속으로 하며 살아왔을까? 많이 이룬 만큼, 잃거나 포기한 것도 그만큼이려니 한다.

각설하고,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나?

좆대가리 달고 사는 한평생,

비록 교하 일 번지에 풍천노숙을 하며 손가락을 빨고사는 형편이라 하여도 한번 아닌 것은 아닌 거지 눈동자 굴리며 사는 삶이 부럽지는 않다.

 

수박이 너무 달아 씁쓸하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