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가을, 오래된 집 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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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2020 가을, 오래된 집 마당에서.

by 바람 그리기 2020.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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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병 성연우

 훈련소 생활 4주 차에 들어간 아들의 소식.

 가을이 깊었습니다.

 

 어슬렁 슬리퍼를 끌고 대문 밖 은행나무를 바라봤어요.

 

2020 가을

 이곳도 가을이 깊어 있습니다.

 

2020 가을_나팔꽃

 온 계절 꽃을 피웠던 나팔꽃 덩굴도, 이젠 갈변한 잎이 더 많아졌고...

 

2020 가을 -유홍초

 하늘을 향해 발돋움하던 아기 손톱,

 '유홍초'는 계절을 닫은지 이미 오래인 듯싶습니다.


큰일입니다

가을입니다

 

☆~ 큰일입니다, 가을입니다. / 성 봉 수 ~☆

 

blog.daum.net

 


  

 어머니 3주기였던 어제.

 예전 같았으면, <탈상> 예의 큰제사.

 누님 동생 매형 매제 조카들과 정성으로 추모의 절을 올렸습니다.

 

젊은 아버지 어머니 섭골 본가에서

 일부는 자정 제례를 마치고 음복 후 귀가하시고,

 일부는 주무신 기척도 없이 아침에 슬그머니 귀가하셨습니다.

 

 빈 집안.

 3주기가 다가오며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생각은 많았지만,

 잠시 북적거리다 다시 조용해진 빈집 안의 오래된 마당을 서성이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 많은 일가를 일구게 하셨으니,

두 사람이 만나 이룬 인연의 고리가 얼마나 엄청난 시간이었던가...

-납골당에 따로 모시지 않고 생시처럼 나란히 곁에 모신 것이 잘한 일이었구나-


 

 일주일 전쯤, 이종사촌 형이 농사지은 토란대를 잘라 한 뭉치 건네주고 갔습니다.

 방수공사 일정에 틈이 없었으니 마당 한편에 던져두고 지냈습니다.

 "어디서, 누가, 왜..."

 삼월이 언니의 무 반응은 당연한 일이니, 그렇게 꾸들거리다 버려질 일이었습니다.

 

 어머니 삼 주기를 앞둔 어제 낮에 그간 공사 때문에 어수선한 마당을 대충 치우는데, 토란줄기가 자꾸 눈에 밟힙니다.

 '당신 친정에서 보내온 건데... 제사상에 올리면 좋아하실 텐데... 그래, 화덕에 솥도 걸어놨겠다. 나무도 있겠다. 내 집 마당이겠다...'

 

 자리 잡고 앉아 껍질을 벗기고, 아리지 않고, 무르지도 않고 질기지도 않을 만큼 잘 삶아 어머님 젯상에 올렸습니다. 나도 맛나게 먹었습니다.

 -밖에 다른 일 볼 것이 있어 처음엔 제사상에 올릴 만큼만 껍질을 벗길 생각이었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나 다 벗겨 삶았습니다-

 


 

 제사 덕분에 줄에 매어 하룻밤을 보낸 삼월이.

 어머니 제사 모시는 동안에는 짖지 않고 조용해서 기특하다 했습니다.

 

삼월이_숯검댕이

 

 아침이 되어 목줄을 풀어주었는데요,

 어느 틈에 화덕을 헤집었는지 주둥이가 숯검댕이가 되었어요.

 

 제 꼴이 어떤지도 모르고 새침 떨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2020 가을 현관 처마의 풍경_달개비

 거실 앞 처마 물받이에 뿌리내렸던 달개비가 시간의 화석으로 멋들어진 풍경이 되어있습니다.

 저 꼴로 유난스럽게 비 많던 한 해를 보냈습니다.

 선친께서 계셨더라면, 택도 없는 일이었을 텐데요.

 


 

 "퍽" "퍽" "퍽"

 며칠 전 2층 옥상에서 방수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내려다보며 삼월이 언니 정수리에 물었습니다.

 

 '뭐 하는 겨?'

 "파 심을라구유!"

 

삼월이 언니 이동식 두엄통

 

 방수 공사하며  2층 어머니 텃밭 했던 흙을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일부는 내려놓고 나머지는 우선 마대에 담아두었는데요, 이제 짬나는 데로 박스 더 구해서 골목에 쭈욱 놓을 생각였습니다.

 화초나 심어 볼 생각으로요.

 

 삼월이 언니께서 부삽 들고 퍽퍽 거리는 모습을 보고 보니,

 '이거, 이동식 두엄 통만 또 만드는 거 아녀?'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옵니다.

 어찌할지, 고민 좀 해 봐야겠습니다.

 

 햇살이 벌써 서쪽으로 비껴 누워 창에 부서집니다.

 바람종이 건듯건듯 우는 오후,

 아름다운 가을 안에 함께 하시길 빕니다.

 

 

 

 

 Richard_Clayderman-A_Comme_A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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