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와 태중의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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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고가와 태중의 나이.

by 바람 그리기 2022.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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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시 반. 
 눈을 뜨자 먼저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어제 잡부 마칠 무렵 굵어지기 시작한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습니다.
 봄 가뭄은 어느 정도 해갈될듯싶습니다.
 선영 부모님 묘소에 보식한 떼를 생각해도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어제 잡부 나간 현장에서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이웃한 고가를 기웃거렸습니다.

 

 요즘은 버려진 폐가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세월의 흔적.
 "뒤뜰의 장독대와 거친 비늘의 이끼 핀 감나무"
 "돌무더기로 만든 배수로"
 "흙벽돌 벽"
 "정주간이 숨어 있음 직한 앞마당과 뒷마당을 잇는 나무 대문"
 "돼지우리 안에 만들어 놓은 시멘트 구정물 통"
 푸른 양철지붕을 떠받친 전체적인 모습만으로는 조금 어색한 듯한 부조화 안에, 구석구석 살펴보면 모두가 정겨운 모습입니다.
 처음엔 흙벽돌로 쌓은 벽에 초가를 올렸겠고,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거치며 초가 위에 슬레이트를 얹고 벽에 회칠했겠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양철 지붕으로 다시 개축했겠고...
 특히, 크기로 보아 돼지우리가 틀림없는 곳에 만들어 놓은 구정물 통은 사진으로도 구경하기 힘든 반가움이었습니다.

 반은 신축 건물이었고, 나머지 반의반은 그런 고가고 나머지는 허물어져 가는 폐가로 방치된 마을. '새 길을 찾아 나서는 것', '그냥 그대로 있는 것', '외면받고 사라지는 것'. 마치 계층 간 세대 간 단절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나의 모습은 중간, 그러니까 이 집쯤의 모습이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詩와 音樂~★ [시집 『검은 해』] 옛집에 걸린 달 / 성봉수

 옛집에 걸린 달 / 성봉수  “글 기둥 하나 잡고 연자매 돌리던 눈먼 말"˚  서울 한 귀퉁이 좁은 하늘 아래  고삐를 묶었던 곳  종잇장 넘기던 잔기침 소리  부딪는 나뭇잎에 바스라지는데  

sbs150127.tistory.com


 저녁엔 아주 불쾌한 뉴스를 접했습니다.
 노래방에서 발생한 시비로 사촌 동서 간인 두 분이 목숨을 잃은 일이 인근 도시에서 발생했데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있는지 마치 내 일처럼 참 불쾌하고 씁쓸했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얼마 전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식 나이인 '세는 나이'와 국제 기준인 '만 나이', 현재 연도에서 출생 연도를 뺀 '연 나이'가 모두 통용되고 있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라면서요. 언론의 보도를 보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니 언젠가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던 듯싶습니다.
 관련 보도를 보면서 제가 처음 든 생각은 '또 이렇게 버려진 폐가처럼 소중한 가치 하나가 사라지는구나'였습니다.
 엄마 배 속에 있는 일 년을 나이로 계산하는 전통. 그것은 태중의 생명체를 이미 독립된 인간으로 여기는 생명 존중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엄청난 정신, 무형의 가치가 편리와 능률에 밀려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려지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낙태권"의 입법이 쉼 없이 요구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무슨 꼰대 같은 소리냐고 반문도 해보지만, 인근 도시에서 어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뉴스를 보면서 "모든 게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져 벌어지지는 않는다"라는 생각과 함께 "편리를 따라 공식적으로 버려지는 태중의 나이"를 살 세대들이 휘두를 부작용의 칼날들이 염려스러워졌습니다.

 한동안 울던 바람종이 잠잠합니다. 비가 멈춘 듯싶군요.
 이제 신록을 맞을 일만 남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승리하시길 빕니다.

 

 

 

 
 202204140510목
 바람종 낭랑한 아침 여명의 霧刻齊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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