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본문 바로가기
낙서/┖ 끽연

고가.

by 바람 그리기 2016. 10. 4.
반응형

 

약국에 들러 종합감기약 한 갑을 사고, 우체국으로 가 주문하신 책을 보내드리고 마트에서 달걀 한 판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꼼짝 말고 그 자리에 앉아계시라 당부한 어머님께선, 세수를 마치고 분단장을 하신 후 오래된 마당 처마 아래 의자에 앉아, 오늘에 풍경 안으로 들어가 계십니다.

커피를 타서 어머님 옆에 나란히 앉아,

나도 시간의 풍경이 되어있습니다.

 

뒤늦게 넝쿨을 뻗은 정체불명의 개화. 아마도 오이인듯싶은데 화단 가운데도 가을볕이 제일 오래 머무는 곳에서 솟아났습니다. 늦었긴 하지만, 어둠 안으로 썩어 없어지는 것보다야 행복한 일이겠죠.

장미는 또 망울을 벌고 자리공의 열매도 핏물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내일이면 장에 팔려가는지도 모르는 강아지, 배가 봉긋하도록 어미 젖을 빨고 단잠에 빠져있습니다. 소국의 개화는 이미 절정이고요.

 

집에 들어서 어머님을 뵌 순간.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느낌이 '훅'하고 밀려왔습니다. 그러면서, 고 백용운 소설가가 1985년인가 현대문학지에 발표했던 '고가'라는 단편소설이 떠올랐습니다. 한국 우수단편집에 수록이 되었었고, 베스트셀러극장인지 TV문학관인지에도 방영되었던 작품인데요, 은퇴한 노부부가 식솔들이 성장해 외지로 모두 떠나버린 오래된 집 마당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며 겪는 잔잔한 감정적 변화를 담담하게 표현했던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셈을 해보니 작가가 55세 되던 해에 발표한 작품인데요, 얼추 지금의 내 나이 무렵이었군요.

화장하고 단정하게 앉아계신 어머님의 모습에서, 한 인간의 고단했던 노정과 한 작가의 쉼 없던 열정을 바라봅니다.

결국, 기억하는 이의 가슴에서나 살아남을….

 

"아무래도 개는 머리하고 꼬리하고 바로 하나로 연결 되어있나 봐!"

'왜요?'

"그러니까 제가 좋으면 꼬리가 동시에 움직이지!"

 

바람종이 게으르게 울리는 마당.

병든 엄마와 늙은 아들이 나란히 앉아 시간의 풍경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어제 증조부님 제사모신 뒤처리를 해야겠습니다.

반응형

'낙서 > ┖ 끽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배 유감.  (0) 2016.10.07
볕 좋은날.  (0) 2016.10.06
바람에 안겨...  (0) 2016.09.29
사람처럼 자는 강아지.  (0) 2016.09.25
소국을 심으며.  (0) 2016.09.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