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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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담배 유감.

by 바람 그리기 2016.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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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온다는 비 예보를 알고도 어머니를 걸어서 모셨다. 야간 투석이 없는 날이고 X선 촬영을 하고 처치실로 가야 하니 집을 일찍 나섰기 때문에 투석을 마치고 집에 도착할 무렵에야 비가 오려니 하고….

 

병원을 나서는데 차들이 길을 가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길은 이미 질펀하게 빗물이 흐르고.

한 손으론 어머니 허리춤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론 우산을 씌워드리며 길을 나섰다. '차를 가지고 와야 하나?'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우산을 든 팔을 쉴 겸 어머니 걸음도 숨을 돌릴 겸, 사거리 농협 처마로 들어가 생활정보지를 화단 턱에 깔아 자리를 만들어 어머니를 쉬시게 하는데….

맞은편 계단 턱에 쪼그려 앉은 여학생들 틈에서 언 듯 연기 같은 게 보인다. 다시 한 번 눈여겨보니 담배를 먹는다.

'야!'

"……."

'너 몇 살인데 지금 담배를 피워! 어느 학교 다녀! 중학생여! 고등학생여!'

"학교 안 다니는데요"

'학교 다니고 안 다니고를 떠나서, 미성년자가 어른들 있는 데서 어디 담배를 피워! 피려면 숨어서나 피던지!'

"가리고 폈잖아요"

담배를 엉거주춤 들고 쪼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앞을 가리고 함께 앉았던 교복 입은 여학생 둘과 남학생 한 명이 현금 인출기가 있는 로비로 들어간다.

처음 소리를 지를 때 인출기 안에서 나오며 "깜짝이야!" 놀라던 아주머니 한 분이 대 여섯 발짝 떨어진 곳에 서서 지켜보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가던 길을 간다.

인출기가 있는 로비에서 남학생과 여학생 한 명이 도로 나오며 나를 비켜 떠나간다. 그러면서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제가 뭔데….)라는 것 같다. 확실치는 않지만, 뭐라 중얼거리기는 했는데, 꼴에 남자라고 실소가 터진다. 그러는 사이, 담배를 피우던 어린 여자애는 인출기 로비 안으로 들어간다.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담배란 것이 기호식품이니 성별을 따진다는 것은 우스운 얘기가 된 지 이미 오래이긴 하지만, 미성년자가 피운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잖는가? 내 새끼 간수도 못 하면서 남의 자식에게 이러라 저러라 할 일은 아니다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른 척 지나쳤으면 입술에 홍기도 가시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가 시내 한복판 사거리 은행 로비 앞에서 그리 당당하고 능숙하게 담배를 피울까?

목구멍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전 한 닢 크기에서 변한 것이 없을 텐데, 그 안으로 집어넣을 것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커졌기에, 내 것 아니면 다 관계없는 세상이 되었을까…….

 

모처럼 내방 창가에 서서 담배를 먹는다.

빗방울이 제법 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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