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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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내공.

by 바람 그리기 2016.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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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모시고 나서려는데 삼월이 언니가 챙겨놓은 바지에 허리띠 끼울 고리가 없다.

살이 다 빠져서 허리가 반 바퀴는 더 감기고 다리에 힘이 없으시니 허리춤을 잡고 모셔야 하는데…. 난감.

 

투석 시술이 안정되시는 것을 기다려 바지를 벗겨 장으로. 수선소에서 벨트 걸게 만들어 달고 어머니 국거리와 밑반찬을 사러 푸줏간으로.

삼시 세끼를 잡수셔야 하니 한우로 하기엔 경제적 형편이 그러하여….

'그것과 그 거로 두 근 한 근 끊어주소'

치아가 하나도 없으시니 심줄 좀 발라달라 몇 번을 얘기했어도, 냉동고에서 꺼낸 그대로 육절기를 돌린다.

 

어머니께서 오래 거래하셨던 수입고기 전문점이 리모델링 하고 업주가 바뀌었다. 개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들렀더니

"우리 집은 한우만 취급해요"

('고래?')

그랬던 것이, 지난 장에 근처를 지날 일이 있어 살펴보니 수입고기 판매를 알리는 홍보물이 붙어 있다.

('고럼…. 별수없지….')

 

육절기로 썬 고기에 이리이리 토막을 내어달라 하니,

"사장님, 너무 얇게 썬 고기라 그리하면 볶을 때 고기끼리 다 뭉쳐요"

'예, 알아요. 아는데, 그냥 이리이리 토막 내 줘요'

"사장님, 그러면 차라리 갈아가셔야지. 고기끼리 뭉쳐서…."

우짜구저짜구…. 말이 많다.

'아, 알았어요. 됐어요. 그냥 담아요.'

보아하니, 도축장이나 업소에서 몇 년 일 하다가 매장을 열고 운영한 것은 처음이거나 얼마 되지 않나 보다.

고기를 썰 때 알아보겠더라니, 사람에게서 풍기는 냄새는 속일 수 없나 보다.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거나 오랜 시간을 투자했을 때, 타인들이 느끼게 되는 내공.

적어도 오늘 만난 푸줏간의 사장에게서는 어느 면으로도 느낄 수 없었던.

 

집에 와 베주머니에 어머니 국거리, 장어와 문어를 넣어 들통에 불 댕겨 놓고

돼지 사태 사 온 것을 찬물에 담가 핏물 빼는 동안, 쇠고기를 주물럭 거리로 양념해 재워놓고.

대충 핏물 빠진 사태를 끓는 물에 데쳐내고

불을 붙여 육수에 조림 양념 간을 하고.

 

탕과 조림 모든 한소끔 끌려 놨으니 이제 물 뿌리고 다시 병원으로 나서야겠다.

 

-조리를 시작하는데 파가 없다.

혹시, 우리 방 냉장고에는 있으려나….

애이 씨!

파는 고사하고 이놈에 냉창고를 어쩌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대상에 집중하고 고민하지 않는다면, 내공은 쌓이지 않는다.

간사한 술수는 늘어날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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