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하는 섬
본문 바로가기
낙서/┗(2007.07.03~2023.12.30)

도배하는 섬

by 바람 그리기 2020. 9. 26.
반응형

 

 어머니 병원 모시고 다니던 몇 해.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집이라고 별수 있었겠나...

 

 건축 연도 워낙 오래되었지만, 그 몇 해 중 눈이 많이 왔던 몇 해에 눈 치우는 것을 깜빡 놓치고 말았더니 천정에 누수가 생겼다. 사후 약방문으로 나머지 몇 해는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꼭 눈을 치운 덕분에 겨울 한철의 상황이려니 했더니...

 

 징그럽게 비가 온 올해 드디어 사달이 났다.

 물이 뚝뚝 떨어진다.

 떨어지기 전까지 천정 미장 합판위에 고였던 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한쪽으로는 썩어 바스러진다.

 옥상 외벽이야 방수 공사 밖엔 도리 없는 일이지만-사실 이것도 몇 해전 건물 도색과정에 문의하니, "있는 것 다 치워놓아야 공사가 가능하다"라고 하니, 어머니 푸성귀 농장으로 쓰였던 흙무더기며, 장독이며,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고물들이며... 혼자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곤란한 상황이긴 하다- 누수된 곳에 얼룩진 벽지를 뜯어낸 흉한 몰골로, 어머니 계실 때 몇 해. 또 떠나시고 삼 년을 그냥 그대로 지내왔다.

 

 어른이 안 계신 집안.

 명절이라야 이젠 찾는 이도 없는 고가가 되어있지만, 지난여름 누수 때 남아 있던 벽지마저도 다 벗겨내 버렸으니 그냥 두고 보기가 심란하다. 

 이틀 전에, P의원 주최의 모임에 참석해 달라는 기별이 왔었지만 이미 계획해 놓은 일이고 명절 전에 마무리하려면 촉박해서 계획대로 진행했다. "껑충 뗘서 노루 XX(우리 엄니 생전 18번 말씀)라고" 이틀 전에야 잡힌 통보 같은 일방적 일정도 그렇고, 하루 전에야 건너 건너 톡으로 전달된 관련 자료도 그렇고... 뭐 그냥 존재감 없는 예의상 청인 듯도 싶었고... 

 

 리모델링하는 분들이, 벽지 새로 하면 문짝이 보이고 문짝 교체하면 싱크대가 보이고 싱크대 교체하면 또 욕실이 추저분해 보아는 것처럼 꼭 그 꼴이 되고 말았다.

 벽지를 여유 있게 끊어왔고 풀도 남았으니 어차피 다 쓸 생각이었지만, 천정만 하고 말려던 것이 일이 커졌다.

 

 농 위와 자개장 위에 어머니께서 남기고 가신 정체불명의 꾸러미 다 끄집어 내리고, 쑤셔 박혀 있던 잡동사니들 이리저리 치워가며 경대 옮겨가며...

 

 천정만 붙일 생각으로 <당초문>이나 <기하 도형> 이 있는 벽지를 사려고 했더니, 싱긋 웃으며 요즘 그런 게 안 나온단다. 천정이 어두운 색이면 방이 좁아 보이고 칙칙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릴 적 섭골 할머니 댁에서 천정의 끝없이 연결된 미로 같은 무늬를 쫒다 잠이 들던 경험을 다시 하고픈 마음도 일면 있었는데...

 

 먼지 구덩이에서 먼지와 곰팡이를 쓸고 벗겨가며 일을 했으니, 벽지 위에 이리 묻고 저리 묻고 난리다.

 은색 펄이 들어간 흰색 계통의 벽지를 벽에까지 붙이다 보니 꼭 정신병동 같다. 

 

 벽지가 방 전체를 붙일 만큼은 아니고 몇 군대 더 붙일 만큼은 남았지만, 풀이 간당 거리니 일단 방은 마감했다. 남은 벽지를 어디에 붙일지, 더 사다가 아예 다 붙일지... 고민해 보기로 하면서.

 

 오늘 마감하기로 작정했던 곳.

 그래서 간당 거리는 풀 때문에 일단 방을 마무리 하게 한 곳.

 

 거실 한쪽 벽과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

 

 하도 기대앉아 때 국물이 반지르르르 흐르고, 부엌문 손잡이 주변이며 전등 스위치 주변이 조선 팔도에 이런 곳이 있나 싶도록 차암 볼만하다.

 보이는 사람 눈에만 보이고, 안 보이는 사람은 천 번을 환생해도 안 보이는 그 불편함.-칠 벗겨진 상. 기름때가 덕지덕지 앉은 환풍기. 내 맘에서 포기한 지 오래인 이것저것...

 

 하...

 붙인다고 붙였는데, 사진으로 꼴을 보니 천상 그지 하꼬방이다.

 전체를 다 붙일지 어쩔지, 이것도 고민해야 할 일이다.

 

 어머님의 자개장.

더보기

 "요즘 사람들은 살림살이를 하나에서 열까지 다 장만해서 결혼하니 무슨 재미가 있어? 결혼하고 산다는 것이, 아이들 낳고 기르며 살림살이 하나씩 불려 가는 재마로 사는 거지..."

 

 공무원 박봉에 일곱 자식 키우시며 계를 들어 하나씩 늘려오신 어머니 세간들.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씩 사라지고 손수 장만해서 떠나시기 전 마지막까지 쓰셨던 자개장.

 

 도배하느라 끄집어내며 보니, 곰팡이에 뒤판이 들떴다. 우리 아버지의 장점이셨지만, 지금의 내가 판단하건대 단점이셨던 "바늘도 들어가면 안 되는 완벽함."

 벽과 1mm도 띄우지 않고 퍼즐 끼워 넣듯 그 자리에 콕 박아 놓으신 덕분이다.

 

 뒤판을 손보면 사용하는데 지장 없을 것 같은데... 

01

 떠나시고 삼 년이 되는 해.

 돌아가시고 채 한 달이나 지났을까? 아래 위로 가득하던 유품들을 쓰레기 봉지에 담아 버리고 이제 것 넋 빠진 시체처럼 입을 반쯤 벌리고 있던 농.

 주인도 떠나고 쓰는 이도 없는 농.

 밖에 내놓고 바라보니, 다시 들여놓을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돌아오는 수요일에 딱지 붙여 내놓아야겠다.

 

 

 하... 머리에 탑시기.

 혼자서 재단하고 풀칠하고 버벅버벅.

 배는 고프고, 높이 다른 의자 세 개를 옮겨가며 하루 종일 똥 쌌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는 내게 일 참 많이 시키셨다.

 땅 파고, 톱질하고, 박고, 미장하고, 도배하고, 때려 부수고...

 하나에서 열까지 꼭 옆에 붙잡아 놓고 시키셨는데.

 제 몸 굴려야 먹고 살 놈이라는 걸 간파하셨던 모양인데, 어쩌랴! 그 공력을 받고도 지금의 나는 도로아미타불 룸펜이 되어 있는 것을.

 

 이 발바닥을 어쩌나...

 

 새로 한 시.

 땀이 식어 샘에서 찬물로 목욕하기는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온수 쓰자고 바깥채 욕실 가서 덜거덕 거리기는 싫고.

 

 풀 묻은 솔과 다라 씻는 김에 머리 감고 발 닦고 대충 마무리했다.

 

 씻고 들어오니 잘 곳이 없다.

 24시간.

 이차저차 내 남은 날을 또 당겨 쓴다.

 

 책상에 막 앉은 새로 두 시 무렵부터 연신 울리는 메일 도착 알림음.

 "이리 재구 저리 재구" 시인 재구 형이다.

 사람이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 본인 소개하던 사설이다.

 

풀꽃.1 .풀꽃 11.천천히 가고싶다. 안개꽃. 만병초-(하얀 진달래). 꽃. 꽃은. 꽃들은. 꽃에게.

풀꽃. 1                                                                                               ..

blog.daum.net

 두 시에 시작한 메일이 다섯 시가 지나도록 계속 온다.

 열어보니 같은 내용이다.

 '이 형이 또 왜 그러는 겨? 잠 안 자고?'

 -짐작컨데, 컴퓨터에 이상이 있어 발신 확인을 못해서이지 싶다.

 

 창부타령 한 곡 얹어 답신을 보내드리는데, 앞선 경험이 있어 <전체 답장>을 확인한다.

 확인했길 망정이지, 민폐 끼칠 뻔했다.

 한편 생각하면, 기억하는 사람들 속에 내가 있음이 감사하다. 

 

 어이고,

 재구 성.

 건강도 안 좋으시다면서, 잠 안 주무시고 왜 이러시지?

 

 

 

 

 

 202009253234금

더보기

*섬.

 

 맘 변하면 죽는다는데, 그젠 난 분갈이. 오후엔 세탁기 문 걸리는 선반 높여 올리고 내친김에 삭은 앵글 빼 내고 치수 재서 앵글 사다가 조립해서 넣어주고 오늘은 도배하고.

 진작부터 머릿속에 그려온 일정인데 징그러운 비 때문에 미뤄 온 것이긴 하지만 가욋돈만 자꾸 나가니 불알 딸랑거릴 날도 머지않았네. 겨울 오기 전에 2층 방수하고, 보일러실 지붕은 내년 봄에야 가능할 것 같고. 제일 중요한 마당 꾸여지는 공사 해야 하고. 창고 지붕, 2층 방 지붕... 어효.

 

 세탁기가 바깥채로 들어가니 화장실 외엔 건너갈 일이 없네. 샘에 중고로 작은 거라도 하나 들여야 하나... 샘에서 온수 쓸 수 있게 궁리도 해야 하고.

 이젠 정말 정말 딴 집 사는 것 같네.

 

 아, 배고프고 졸리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