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손에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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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남의 손에 열쇠.

by 바람 그리기 2020.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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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트렁크에 들어가도록 분리형 붕대를 별도 구입해 사용한 예초기.

 년 한차례뿐이긴 해도 구입한 것이 십 년도 훨씬 전이다 보니 작년부터 연결 부위 고정 틀에 유격이 생겨 겉돈다.

 고무장갑을 잘라 그 유격을 잡아 사용했는데, 올해 꺼냈을 때 그것이 삭아 다시 만들어야 했다.

 

 하,

 너트 하나 잡고 두 시간.

 근시에 온 노안은 늘 내 의지의 한계를 시험한다.

 "쓰면 원시로 안 보이고 벗으면 근시로 또 안 보이고"

 썼다 벗었다...

 몇 해전 거금을 주고 맞춘 다초점 안경, 원시도 그 정도가 자꾸 변하니 거기에 맞게 계속 안경을 바꿔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으니 평범한 일상에서나 유용할 뿐 있으나 마나.(없는 거 보다야...)

 

 

자각

 내가 성질이 얼마나 급한 사람인지.  그 급한 성질을 언제 자각했는지.  자각하고,  고치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로 문신을 새기며 어떻게 조련했는지...  실 타리 풀리듯 기억이 되짚어졌다.  

blog.daum.net

  전날 본체를 손 보아놓았기 망정이지, 너트 하나(정확하게는 너트를 감싸는 고무장갑이지만) 잡고 두 시간을 끙끙거렸으니 낭패 볼 뻔했다.

 저녁에 약속은 잡혀있는데 진도는 안 나가지... 맘은 급해오고.

 정확하고 빈틈없이 몇 번을 재단하며 애를 써도 유격의 틈에 고무장갑 자른 것이 들어가지 않는다.

 '애라이, 최후로 수단. <무식한 게 최고다>'

 된다!

 

 아...

 그제야 작년의 상황이 오버랩된다.

 '작년에도 이랬다...'

 -몸 못지않게 뇌도 늙었다. 작년의 똑같은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니... 뇌색남은 어디 갔나?

 


 잠을 못 잔 탓도 있겠지만, 힘들다.

 작년보다 더 힘들다.

 벌초를 마치고 사진 한 장 남길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


 "직장 생활하면서 벌초까지 하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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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가 직장에서 들었다는 말을 건넨다.

 그 말이, 그러려니... 하던 현실 상황에 대해 여자 안에서 웅성거리던 자각을 깨운 열쇠가 되었음이다.

 벌초 내내 짜증이 묻어나는 행동들.

 여자의 나이도 쉰 중반이 되어가니 힘들기도 한 일이겠지만,

 "당연한 것""당연하지 않은 것"

 "나의 것"에서 "남의 것"으로 반쯤 내어 딛고 있는 발.

 그 경계에 닿아 있음을 알았다.


 "직장 생활하면서 벌초까지 하면 어떡해!"

 그 안에 내포된 많은 상황들...

 

 데자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롯이 나 혼자서 짊어질 무계.

 그마저도 목숨줄 붙어 있는 동안의 일일뿐이다.


 집을 나서기 전 신발끈을 동여매며 예상한 일이다.

 

 어느 구석에서 발견한 아주 오래된 쥐의 사체같이 빳빳하게 마른 헌 등산화.

 해마다 벌초 때만 신고 별다른 관리 없이 쑤셔 박아 놓다 보니 그렇다.

 기울어진 법면이 넓은 선산과 섭골 '이빨 빠진 할머니' 묘소.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억지로 버틴 시간이 길다 보니 양 발바닥과 발가락에 잡힌 물집.

 잡힌 물집을 헤아리는 혼잣말에도 여자가 쏘아붙였다.

 "평소에 일을 얼마나 안 하면 그럴까!"


 바람종이 슬겅설겅 울었던 하루.

 

 간밤엔 전기장판 온도조절 스위치를 4칸에 맞춰 놓고 잠을 청했는데, 자고 나니 몸이 더 피곤하고 힘들다. 아마 램수면이 없었던 듯싶다. 잠에서 깬 지 세 시간째,  잘못하면 담이 들듯 싶어 컨디션을 되돌리고 일어날 생각으로 1시 무렵까지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러면서 또 데자뷔.

 -여자가 출근하기 전 내 방문을 열고 전기장판 콘센트를 뽑고 나가던 시절. 징그럽게 춥던 그 시절. 마지막 끈을 놓으려던 시절. 그때 찾은 그 도시의 여관. 그 침대에 깔려 있던 전기장판. 온도 레벨을 마지막 7에 맞춰 놓고 잠을 잤지만 밤새 잔 것 같지 않게 피곤하던 아침. 그 과유불급의 경험...

 

 내일 날씨가 좋다니 예초기를 분해해 손 봐서 원상복구 해 놓아야겠는데,

 구리스 칠 곳에 달려 붙을 개털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짜증이 앞선다.

 

 

 

 

 202009202918일

 AlexFox-David & Sebastian_-_바람종MIX

 토요일, 집에 도착해 공구를 내리는데 갈퀴가 안 보인다. 다시 빠꾸오라이 해서 하안참을 찔룩찔룩 걸어 올라가 찾아왔다. 트렁크를 열기 전, 차 옆에 올려두며 '빠뜨리지 않아야지'라고 생각까지 했으면서도... 산막에 강아지 보느라고 깜빡했다. 흠... 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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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들 앞가림이나 잘하며 살면 고마운 일'이라 생각하고, '자식 농사 잘 지었다'라는 말을 듣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아래에서 큰 싹아지 있는 속 깊은 아이들"이 아닌, 그냥 이 시대의 그렇고 그런 아이들. 아니, 어쩌면 한참 모자라는... "우리는 먹었다"며, 산에 다녀온 엄마가 저녁상 차리는 것을 보고 있는 머리 큰 아이들. 아무리 각자도생이라지만... "후회는 너의 몫"이고, "어! 하면 차 떠난 뒤"라는 것을 지금은 모를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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