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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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세탁기 사망.

by 바람 그리기 2020.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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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세탁기를 돌리던 삼월이 언니께서 방패를 들고 나타났다.

 "이게 빠졌는데 한번 보거라!"

 

 탈수 때마다 낙랑국의 자명고가 되어 북 치는 소리가 진동하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반복한 것이 한두 번이었나. 정지 페달이 고장 나는 전조가 이미 오래전이었으니 놀랍지도 않다.

 '여보시게, 탈수 그렇게 시키면 고장 나는겨. 빨래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고 돌려야지...'

 몇 번의 뇌까림이 있었지만, "그럼 좀 해 봐(요)!"의 뻔한 피드백이 있기 전에 가마니 쓰고 지내왔다.

 

 "이거 기어까지 부러졌는데요... 현재도 생산되는 제품이라 부속은 있지만, 기십만원 들여 고쳐도 이 정도면 다른 부품도 많이 상했을 텐데  오래 쓴다는 보장을 못하니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월요일에 출장 온 AS 기사가 사설 끝에 가부를 묻는다.

 '연결 나사만 부러진 줄 알았더니... 잠깐요. 우리 가장이 판단하셔야 하니 전화 넣어볼게요.'

 "아, 그러면 제가 직접 전화드리고 여쭤볼게요"

 

 삼월이 언니와 조곤조곤 통화를 마친 AS기사가 떠나간 후, 세탁조 안에 대가리를 쑤셔 박고 핸드폰 불빛으로 살피니 오래전부터 야금야금 부러지며 돌아가다 이번에 댕강 잘려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01

 통돌이. 2005년도 생산된 제품이니 오래 쓰기는 했다.

 15년 전, 누님들이 바꿔드린 어머니 세탁기.

 어쩌면 이렇게도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 가는지, 서운하고 야속하고 담담하고...

 그 모든 것을 체념으로 받아들이고 수긍해야만 하는 감정이 묘하다.

 


 AS 기사가 온다는 말에 삼월이를 묶어 두었다.

 기사는 세탁기를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고, 그때마다 자문이라도 구하는 듯 누군가에게 전화를 연신 넣는다.

 한눈에 봐도 꼭 우리 아드님 같은 게 풋내가 퐁퐁 풍기는 햇병아리다.

 그 병아리가 샘 한쪽에서 삐약거리다 대문 밖으로 사라지고도 한참을,

 삼월이는 목이 아플 만큼 징그럽게도 짖어댄다.

 밥 값 하느라 애썼다.


 월요일.

 입대 전 마지막 출근 한 아드님이 받아 온 꽃다발.

 저녁에 삼월이 언니께서 들고 건너온다.

 "이거 어떻게 두어야 옳은고?"

 

 지난가을 출판기념식 때 받았던 꽃다발 걸어 두었던 것이, 부스러져 떨어지길래 버린 것이 이틀 전인데 또 끌고 건너오셨다. 무운을 빌며 건넨 것을 바로 버리라고 내 입으로는 차마 못하겠어서, '두 군데 화병에 갈라서 건너채 하나 여기 하나 놓으시죠?'라고 의견 드렸더니...

 "나는 그런 것 못하니 자네가 알아서 하시게. 그리고 뭘 지저분하게 두 개로 나눠? 그냥 하나로 해서 여기다만 두지..."

 '넵'

 하명을 받고 화병을 달라하니, <강경 뭐시기 상회>라고 쓰인 플라스틱 젓갈통을 건네신다.

 대충 팍팍 꼽고 포장했던 종이로 감싸 내 서재 창가에 올려놓았다.

 

 여름이 아니니 물이 썩을 일은 없겠지... (향기는 하나도 없다)


 지난 포스팅에 댓글이 달렸다.

 

 

 내 블로그는 물론이고 다른 SNS 역시 댓글 달리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없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까칠하다고 느끼나 보다. 아니, 까칠하긴 하다. 이 방에 댓글 창을 열어 놓은 것도, 댓글에 답글을 다는 것도 최근에야 일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뭣도 모르고 한참 블로그를 하던 시절엔 서로가 소통하는 훌륭한 도구였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고 나면 나처럼 댓글 창을 닫아걸거나 그 단계도 넘어서면 비공개 방으로 걸어 잠그는 것이 태반이다. 그런데 오늘 내 까칠한 방에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댓글 내용이 삼월이 소리다.

 댓글을 바라보며 한참을 키득거렸다.

 (심심하구나...)

 

 아무리 비로그인 상태로 익명이나 구라로 아이디를 쓰고 댓글을 달아도 다 안다. 아는 수가 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블로거 경력이 몇 년이고 그동안 별별 일을 다 겪었다. 그러다 보니 나만의 노하우와 비기가 있다.

 예전엔 지구 끝까지라도 쫒아갈 기세로 박살을 냈다. 실제로, 내게 말 잘못했다가 신상 다 털리고 포탈에서 사라진 이가 몇 분 된다.(지금 생각하니 너무 가혹했다)

 

 「이기적」

 넉 달 전에는 마빡에 점찍은 무명씨로 나타나셔서 삼월이 소리를 하더니만 또 심심한가 보다. 누구인지도 안다.(내가 모를 것 같지요? ㅎ)

 고생이 많으시다. 애쓰신다. 내 방이니 그러겠지만, 다른 방에 가서는 그렇게 하지 마시라. 아차 하다가 신세 조진다.ㅋㅋㅋ

 

 「이기적」  이 삼월이 소리를 핑계로 [비 로그인] 상태에서는 글을 쓸 수 없도록 설정을 바꿨다. 누구든 부담 없이 함께 하기를 바라며 열어두었는데, 길 닦아 놓으니 미친년 지나간 꼴이다. 떡 본 김에 제사지냈다고 생각하시고, 서운하신 분은 「이기적」 이를 원망하시라.


 날 밝았다.

 모두에게 좋은 하루 되시길 빈다.

 「이기적」은 빼고~~~.

 

 

 

 202009223102화

 Shocking_Blue-Venus&삼월이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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