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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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사랑방

돈은 참 좋아!

by 바람 그리기 202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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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나리고 그 위로 비가 내리고 다시 눈이 나린 푹한 날이었습니다.
 나린 눈 위로 뿌린 비에 눈이 녹아 얼고, 그 위를 눈이 덮고, 날이 푹하니 꼴이 엉망입니다. 물론, 제설이 잘 되고 왕래가 잦은 문밖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치울 것이냐, 이대로 녹게 내버려 둘 것이냐!" 오전 내 일기예보를 살피며 간을 봤습니다.
 오후에야 어찌할지 결정하고 장갑 끼고 장화 신고 마당으로 내려섰습니다.
 이 질퍽질퍽한 눈이, 바닥에 이미 얼음이 된 비와 달라붙어 밤사이 얼게 되면 답 없는 일입니다.
 마당과, 마당에서 대문으로 이어지는 골목과, 1층 옥상을 그렇게 치우고 2층 옥상으로 올라섰습니다.
 '휴...'



 눈도 아니고 얼음도 아니게 바닥에 얼어붙어 시루떡처럼 쌓인 상태를 확인하니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목장용 플라스틱 대삽으로 찍고 긁어 떼어내어 행길 쪽 벽면으로 모두웁니다. 반쯤 치웠을 때, 탕국에 대충 말아 한 끼 때운 늦은 아점의 열량이 다했나 봅니다. 똥구녕에 힘이 빠지며 손이 덜덜 떨립니다. 입에서는 욕이 절로 나옵니다.
 '아이 C! 힘들어 죽갔네. 그만 치우고 내려갈까?'
 담배 한 대 먹으려다, 쉬었다가 하면 더 힘들 것 같아 물었던 담배를 도로 넣고 나머지 눈을 마무리하고 내려왔습니다.

 난닝구와 도꼬리가 흘린 땀으로 다 젖었습니다. 딴 날처럼 잡부용 난닝구와 누더기로 갈아입을까 생각하다가, 마당처럼 철벅 철벅한 상태이려니 입던 옷을 그냥 입고 나갔습니다. 빨래하기 귀찮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내년 한 달은 더 입을 난닝구가 홀딱 젖었으니 짜증 납니다. 그래서 그냥 마르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감기 걸릴까 찜찜합니다. 그제, 어제. 자고 일어나면 원인 모르게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던 이유도 있습니다.
 얼른 젖은 난닝구와 도꼬리를 훌러덩 벗습니다. 몸에서 안개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새 난닝구와 겉옷을 챙겨 입고 냉장고에 찬 우유 한 컵을 따라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대책 없는 실손 보험.
 혈압약을 자발적으로 처방받아 먹기 시작한 후 "사돈 장에 가니 씨갑씨 따서 따라나서는 심정"으로 들었던 실손 보험. 그래서 정작 중요한 심혈관계는 전혀 보상되지도 않는 쓸데없는 실손 보험. 처음 들었던 금액에서 곱절은 늘어난 실손 보험. 몇 세대를 몇 세대로 변경하니 뭐니 해도, 이 보험이 몇 세대인지도 모르는. 해약하자니 아깝고 이어가자니 내년엔 더 오른다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내 유일한 보험.

 어깨 통증약에 비보험 항목이 있고, 2년 전에도 청구해 기백만 원이나 약값 일부를 돌려받아 여태 요긴하게 썼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2년 치 처방전을 모두 발급받고 촬영해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2년 전 만큼은 아니더라도(아침저녁 하루 두 번씩 먹으라는 통증약을 하루 한 번씩만 먹어서인 거 같습니다. 물론, 내 맘대로입니다) 공돈 생긴 기분입니다. 작년에 생애 처음으로 대장 내시경 하며 용종 떼어낸 자료도 챙겨두었다 첨부했더니, "질병인지, 수술인지, 뭐라 쓴" 보너스 같은 돈도 들어왔습니다.
 '차값보다 더 들어도, 쩍쩍 갈라진 차 타이어를 바꿀까?'
 생각했다가, 그냥 느낌대로 질렀습니다.
 마침 스킨로션이 떨어졌는데 이번엔 만 원이나 더 비싼 거로 시켰습니다. 몇 알 남은 프로폴리스도 부담 없이 시켰습니다.



 그리고, "전기 먹는 하마" 안방 난방 텐트 아래 어머님 쓰시던 돌침대 위에 깔 전기 요도 장만했습니다.
 참 잘했습니다.
 옥상에서 내려와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에 이어 문자가 도착해 있습니다.
 며칠 전 보낸 한 자에 63원꼴인 원고료 받을 계좌 알려달랍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받았습니다.



 우유 한 곱부를 마셨더니 여태 배가 그득합니다.
 작년 위장약 먹기 전 증상이 한 수저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배고픈 줄 모르는 거였는데, 혹시 또 그런 게 아닌지 모르것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렇습니다.

 술에 잔뜩 취한 친구에게 전화 받고 한참을 통화했습니다.
 "기껏 챙겨줬더니, 왜 네 몫은 이틀 일당뿐이냐!"라며 꼬부라진 혀로 화를 냈습니다. 그 대신 '잡부가 기공 일당 받았노라'고 그냥 웃었습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돈은 참 좋습니다.

 중얼거리는 동안, 머리 한쪽에서는 목사님 생각이 났습니다.
 아마도 도신 스님에 "님의 향기" 절절한 통곡이 흘러나오고 있어서인 듯싶습니다.
 "칠뜩아!" "사랑하는 봉수 씨!" "건강 잘 챙겨라!" "어머님 환우 중에 쾌차 기도 올렸고" 가끔은 "칠뜨기 건강하라" 기도도 올린다는 목사님.
 이름이 뭐시기인지도 모르는 목사님.
 사람 일생 사는 거 별거 아닌데, 얼굴 한 번 뵐 날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멘!

 

★~詩와 音樂~★ [시집 『바람 그리기』] 사양 꿀 / 성봉수

사양 꿀 / 성봉수 낡은 도꼬리를 걸치고 길을 나선다 늘어진 주머니 안에서 나를 꼼지락거려도 네게 내줄 것이 없다 고래 그물이 되어버린 가난의 주머니 오늘로 돌아와 도꼬리를 벗는데 절망과

sbs150127.tistory.com



 꼭 11년 전 생일 무렵 이때 썼네.
 세월이 거짓말처럼 흘렀네….

 

 
 202212212442수
 도신 스님-님의 향기.
 배는 아직 안 고프고.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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