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사발 속의 씨 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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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막사발 속의 씨 간장

by 바람 그리기 2020.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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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히 몇 백 년은 되었을,

 얘기 오강 만한 독에 담긴  씨간장.

 

 

 독 뚜껑을 열어 보니 그 마저도 바닥이 보이고,

 한쪽으로는 장석(醬石}까지 드러났다.

 마음이 급하다.

 

01

 생명체의 유무를 떠나 관심받은 만큼의 크기로 몫이 되는 것이 만물의 이치인데, 씨 간장독 한번 볼만하다. 무관심의 더께를 손으로 한번 쓰윽 훑으려다가 불연, 이삼평 도공이 끌려가 만든 왜놈들의 국보가 떠올랐다. 저대로 한 백 년만 묵혀 문양이 되면 일본판 <진품명품>에 출품해도 고가의 감정을 받을듯싶다.

 

 

 된장보다 간장이 모자라니 깊은 맛의 장을 위해 담그고 60일 되어서야 메주를 갈랐다.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담갔던 독이 새서 지금의 독으로 옮겨 담았는데.

 간장 띄운 날도 오래되었는 데다가, 메주가 손을 탔으니

 그러니 그때까지 거무티티하게 잘 떴던 간장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차저차(소금물에 비해 메주 양을 반은 더 많게 담아놔서) 소금물을 더 타서 보탰으니 실질적으로 된장 가르던 날부터 다시 띄우는 것과 매 한 가지가 되어버렸다.

 

 볕 좋은 날마다 뚜껑을 열어 놓고, 발효균이 곱이 되어 곰팡이가 앉지 않도록 휘저어주는 것이 요즘의 일과.

 요 며칠 전부터 누리티티 탁하던 빛에 검정 빛이 비칠랑 말랑 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이른 장마가 시작되었다.

 적어도 장 빛이 제대로 날 때까지는 신경 써서 봐 줘야 하는데, 아무리 백수건달 놈팡이라도 독 뚜껑 열고 닫느라 집 안에만 처박혀 있을 수도 없고, 비라도 나리면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단도리 할 사람이 없으니 뚜껑 열어 놓고 외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한참 햇볕과 바람이 필요한 이때에 독 뚜껑을 가물에 콩 나듯 열어둘 수는 없는 노릇이고.

 

 씨간장은 바닥이 보이고 새로 담근 장은 아직 익지도 않았고 장마는 오고...

 그러니 맘이 급하다.

 

 궁리 끝에 유리 덮개(어머님이 장만하셨던 것은 반절은 깨져서)를 사러 온라인 쇼핑몰을 한 사흘은 눈동냥하며 돌아다녔던 거 같다.

 

 오늘 목 빼고 처방받은 혈압약 타느라 시장 입구 약국에 들렸다가,

 '염병, 온라인 싸면 얼마나 싸 것어. 천 원 아끼려고 돌아다니다가 장만 버리것다. 이래도 없고 저래도 없는 놈이,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데 그냥 카드로 과감하게 긁고 사야것다'

 

 

 시장 뒷골목에서 짠지에 쐬주 한 병 걸치고 돌아와 덮개를 씌워보니 꼭 맞는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잘 저어주기만 하면 되니 한시름 놓았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다만,

그래도 내 목숨 붙어 있는 동안의 일이다.

앞선 이가 그랬듯...

 

생각할수록, 우리 집 천룡신은 너그러우신 것 같다.

앞선 이들이 손 모두어 빌던 그 시간의 애씀이 아직은 다하지 않았거나.

 

 

천룡신을 안다.

 술밥을 먹은 탓도 있지만, 정확하게 아홉 시 사십 분에 작정하고 자리에 들었습니다.  자리에 들며' 내일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자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아, 실컷 잤다'  몸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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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이여라

모두 편한 주말 보내시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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