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은 각자의 몫인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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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미각은 각자의 몫인 게지요.

by 바람 그리기 2018.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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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기 전까지, 두 시간 남짓 시간이 빕니다. 잠깐 눈을 붙이면 되겠습니다.

욕심이었습니다.

이리로 젖히고 저리로 젖히고, 베개를 베었다 뺐다, 바로 누웠다 엎어졌다….

어찌해도 통증이 성가시게 쫓아옵니다. 결국, 잠은 고사하고 이 저리 뒤척이며 눈물만 찔끔거리다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밤을 꼬박 새운 여파인듯합니다.

 

콩나물국에 밥 한술을 말아 대충 때우고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서 오 분 거리를 걸어 먼지 낀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겁니다.

"우~왕! 우~우~왕!!"

지난 몇 차례 시동을 걸고 얼마간, 엔진 소리가 심상치 않더라니. 소프라노와 베이스의 음역을 번 갈며 굉음을 지릅니다. 볼 것 없이, 연료거나 연료 공급장치의 이상입니다. 엑셀레이터를 강제로 몇 번 밟아봐도 진정의 기미가 없습니다. 시간에 틈이 없으니 카센터에 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라 모르겠다!' 뭔 똥배 짱인지 그냥 출발했습니다.

대략 200m를 진행하는 동안, 야생마에 처음 얹은 안장 위에 올라있는 것 같습니다. 제멋대로 껑충껑충 뜁니다. '에라이, 모르겠다' 뭔 똥배짱인지 액셀레이터를 더 힘껏 밟았습니다. 채찍을 힘껏 휘두르는 것 같이 말입니다.

 

행사 시작 30분 전.

다행히 얌전해진 차를 몰고 제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주최 측이 준비한 커피를 한 잔 마십니다. 지인이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자가용으로 도착하신다 했는데,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주최 측에서 약속 장소에 맞으러 가 있다는데, 내가 나가는 게 나을 듯싶어 행사장을 다시 나왔습니다.

 

평생을 훈장 노릇을 했으니, 談力이야 거칠 것이 없고. 내용이야 뭐, 거기서 거긴 얘기죠. 맘을 열고, 여리게 팔랑이는 감성의 깃털을 선입견에 얹어 귀를 세운 이에겐 연인의 귓바람보다 더 달콤했을 수도 있었겠고….

 

나와 연이 닿았던 선생님 중 몇 분이, 내가 기억을 떠올릴 무렵이면 희한하게도 어김없이 세상과 막 하직을 한 후였습니다. 그래서, 게으른 나를 자책하게 하곤 했습니다.

 

나라에서 집을 지어주고, 도로엔 고동색 표지판을 내 걸어드린 선생님.

평생을 초등학교 코흘리개와 함께 보낸 선생님.

달이 뜨는 날이면, 여기저기서 소식을 받는다는 초특급 최상급의 시인님.

일부러 찾아뵙지는 못하더라도, 이곳에 강연을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후회할 일 만들지 말자'라고 나선 길이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일이었습니다.

나조차도 언제였는지 기억의 실타래를 풀지 못했으니까요. 이곳으로 강연을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전에 오래된 전화번호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지식과 상식을 총 동원해 번호를 재 조합해서 연락을 드리고 받았습니다. 운이 좋았든, 연이 남았든, 둘 중의 하나는 맞았다는 얘깁니다.

슈퍼 울트라 초특급 시인이 되어 계신 대가께서도 역시나 기억의 교집합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뭐, 상관 없는 일입니다. "최하 100세에서 120세 까지는 살게 되는 세상이 왔다"고 강연을 하셨지만, 언제 또 일부러 찾아 뵐 일은 없을듯 하니...

 

강의가 끝나고 기념사진들을 찍습니다.

'사진이나 한 방 박을까?'하다가, 부질 없는 일이라 관두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청하는 주최측의 호의를 정중하게 사양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선생님, 조심해서 내려가시고 건강하세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으로 햇살이 눈 부시게 부서집니다. 흩어지는 빛의 파편. 그 실체를 직시하고자 실 눈을 뜹니다.

('가까이 보아야 보인다'던, 그 뻣뻣하던 목아지의 슈퍼 울트라 초특급 대가와 다를 바가 없네. 슈퍼 울트라 초특급 대가가 되면 다 그런 모양이네. 하긴, 자기가 쓴 글에 치여 사는 형편도 힘들긴 한 일이지...)

 

행선지를 카센터로 향했습니다.

"아이고...브레이크 오일이..."

볼 것 없는 일입니다. 주행거리가 65,000km라 해도, 21년 동안 한 번도 갈아주지 않았으니 부처님 눈물였더라도 별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엔진 오일 교체를 위해 리프팅을 합니다.

"아이고...이게 이런데, 이렇네요!"

차 꼴도 주인을 닮아 안도 속도 다 썩었습니다. 덩어리가 큰 부품이니 신품을 쓰기엔 부담이 됩니다. 알아서 리폼 재품으로 수리를 해줬습니다.

<250,000원>

잘 했다 똥차야!

 

집으로 돌아와 점심상을 차렸습니다.

약을 먹어야하니, 건너 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꼼지락 거리기는 귀찮고...

냉장고에 오래된 도넛 세 개에 곁들여 코코아를 탓습니다.

렌지에 뎁히려는데, 두 개는 찹쌀이고 하나는 밀가루 꽈배기입니다.

너무 돌리면 찹쌀은 떡이 되겠고 덜 돌리면 차갑겠고. 애매합니다.

위생팩에 담아 뒤집어가며 20초씩 뎁혔습니다. 팩이 부푸는 것을 보고 잽싸게 꺼냈습니다.

 

이런...

한 쪽은 물컹하고, 한 쪽은 돌덩이 같습니다.

다시 뎁히기도 그렇고,

딱딱한 곳은 딱딱한데로 오도독 거리고

물렁한 곳은 물렁한데로 질퍽질퍽 우물거립니다.

사는 게 다 그렇습니다.

딱딱하게 보인 것이 물렁하기도 하고,

물렁하려니 했던 것이 돌맹이 같기도 하고...

 

단맛이냐, 쓴맛이냐.

맛있냐, 맛없냐.

세모냐, 네모냐

미각은 각자의 몫인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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