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정 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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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빈정 상하다.

by 바람 그리기 2016.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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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았던 페북을 연지 며칠.

이런저런 이유는 절미하고, 그냥 심드렁한 일상이 문을 걸어 잠그게 하였었는데…….

 

오늘 노 시인이 올린 <헌 책을 버리며>란 단시를 마주하곤 '피식'웃음이 나왔다.

최고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상아탑에서 후학을 양성하다 현직에서 은퇴하신 어른.

적당히 난해하나 혼란스럽지 않고 함축적으로 대상을 고찰하되 시어로 쓰인 평이한 단어들이 절대 가볍지 않다. 역시, 내공이 쌓인 아우라들이 글마다 번쩍인다. 그러니 개으른 내가 알림이 아니더라도 가끔 들러 올린 글들을 읽고는 하는데.

 

제목이 같은지 확실한 기억은 없으나, 작년 어느 때에 유사한 제목의 시를 읽었었다.

오늘은, <내용이 좋거나 공들여 만든 것을 골라내고> 헌 책을 버리노라니 <사람도 오래 남겨지려면 맘 씀씀이가 그리하여야겠다.>고 시작 노트를 달아 끝을 맺었다.

 

작년의 글에는 '제 책도 버리셨겠군요'란 댓글을 달았던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답글은 받지 못했던 거 같다.

한데 오늘 또 책을 버리셨다는 글을 보니 웃음이 피식 나며 '…. 책을 또 버리셨네요'란 댓글을 달았다.

여물지 않은 내 개인적 형편 탓이겠지만, 솔직히 난 '인생 달관류'의 잠언 같은 글에는 별 맘이 가지 않는 사람이지만, 노시인의 농익은 경륜을 믿고, 그 내공에서 나온 문구이니만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는데…….

비슷한 경우로, 오래전 선종하신 '법정'스님의 베스트셀러 책 역시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아니, 내심은 '당신의 업을 끊고 깨달음을 구하려 정진을 해도 모자랄 현생에 남 걱정의 오지랖도 참 넓다'는 비아냥을, '노 시인의 잠언 같은 시를 이해하는 심정과 같은 형편으로' '그 또한 수행의 방법이겠지. 출가자의 깊은 속을 범부인 내가 다 헤아리랴'라며 잠재우곤 했었다.

그러다, 법정 스님이 자신의 시신 기증과 함께 유언으로 남겼다는 "내 책을 다시는 출간하지 말라"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내 말을 믿지 마라"라던 석가모니의 말이 떠오르며 <법정 스님이 선종하면서야 깨달음을 얻었구나>는 건방진 뇌까림을 예전 블로그에 올렸었다.

 

오늘,

<헌 책을 버렸다.>는 노시인의 글을 접하면서,

'허허…. 이 어른은 그때 버리고도 또 버리시네. 뭘 맨날 버려. 한 번에 버리던지, 한번 버렸으면 그 후의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 고르고 챙기지 말아야지'란 생각과 함께 빈정이 상했다.

 

오늘따라 볕이 비스듬하게 넘어서는 적당한 어둠이 맘에 든다.

빈정 상한 마음에 모처럼 달달한 믹스커피를 잡고 어둠 편에 앉아 담배를 빨고 있자니,

'버릴 것에 대한 눈꼽만한 구분도 서지 않는 나 자신에 더 빈정이 상한다.'

봄 눈이 온다.

남화용의 홀로 가는 길을 듣는다.

남겨진 것이 있으면 또 그리워 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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