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파다.
본문 바로가기
낙서/┖ 끽연

샘 파다.

by 바람 그리기 2022. 8. 19.
반응형

 

 

 

 뒷방에 숨 깔딱거리는 노인네 옮겨 놓고 죽었나 살았나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묵은 고추 자루 안채 거실문 앞, 서재 입구에 들여놓고 오며 가며 내려보고 서서
 "한 번 더 말린 건디... 빻아 와야 하는디..."



 일 년을 광에 묵혀 희아리 지고 벌거지 꼬인 고추를 새삼스레 '널었다 걷었다' 수선 떠는지,
 한 번 더 말렸거나 말았거나, '장마'라는 말을 없애고 '우기'로 바꿔야 한다더니 정말 비 예보는 계속되고 다음 주면 벌초 다녀와야 하고 바로 추석이 될 테니, '툭'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고 볼 것 없이 기약 없이 '널었다 걷었다' 할 판이다.

 비 예보가 마침 오후에 있으니 광에서 멍석 대용 천막 깔판 챙기고 자루 메고 뒤뚱뒤뚱 옥상에 올라가 널고 내려와,
 깁다 말은 시 잡고 마무리해서 보내 놓고 아점(뭘 먹었지??? 아!)으로 밥 한술 찬물에 말아 쌈장에 고추 찍어 먹고 나니 오전이 다 갔다.

 방비 챙겨 옥상 다녀와 집 앞에 차 옮겨 놓고 자루를 들고 나서는데,
 "고추 팔으셨어? 햇고추여요?" 이웃 문방구 아줌니께서 쫓아오며 묻는다.
 '아니요, 묵은 거요'
 "아이고, 그걸 여태 안 빻았어요? 벌레 안 생겼어요? 여름 오기 전에 빻아서 냉장고에 넣어뒀어야 하는디..."



 장날이라 혼잡할 것을 염려했더니, 날이 찌뿌둥해선지 별 어려움 없이 방앗간 앞에 주차했는데...
 "아니, 묵은 고추를 씨도 안 빼고 빻으면 맛대가리 없어 어찌 먹는댜?"
 '떫떠름하고 텁텁한 게 맛있다고 빼지 말라네요.'



 9kg.
 벌거지가 먹고 희아리 진 것 치고는 많이 나왔다.
 간 김에 마주 보는 소금집에서 5년 묵힌 35,000환 짜리(삼월이 언니는 로또가 되도 이런 소금 못 사지) 한 포 들어다 삼월이 집 앞에 세워 놨으니 알아서 쓸 테고.
 목마른 놈이 또 샘 팠다.


 삼월이 아줌마.
 건너채 식구들이 귀가 전까지는 우리 안에 쪽 뻗고 처박혀 꼼짝 안 하니, 내가 들거나 나거나 멀뚱멀뚱 신경 쓰지 않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오늘은 지 언니께서 주고 간 사료가 그냥 있다.



 나보다 에어컨 바람을 더 쐬고 사는 ㄴ이니, 더위 먹었을 리는 없고...
 불러내어 손에 쥐고 대령하니 대가리를 꼬며 외면한다.
 '먹어 이ㄴ아! 뒤져!'
 한 알씩 아가리에 쑤셔 넣으니 오도독오도독 잡수신다.
 그렇게 반 주먹쯤은 넘기셨으니 되었는데...

 누가 시켜서 하랴만, 엄니 살아계셨으면 그러셨겠다.
 "어이... 유난도 떠네"

 

 
 The_Ventures-My_Blue_Heaven
 종일 잠잠하더니 이제야 비가 오시려는 지 바람종이 울기 시작하네.
 입은 구준한디, 먹을 건 커피밖에 없네.
 오늘도 한 편 또 어찌 꼼지락거려야 되는디...

-by, ⓒ 詩人 성봉수


 

반응형

'낙서 > ┖ 끽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이라서  (0) 2022.08.23
허비  (0) 2022.08.20
다행이다.  (0) 2022.08.14
노가다  (0) 2022.08.08
긴 하루.  (1) 2022.08.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