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늠 없는 몇 해 전,
지방 쓸 종이를 한꺼번에 재단하며,
'이 정도면 나 살아있는 동안은 너끈하게 쓰겠지...' 했었는데.
기제사용 종이는 아직 많이 남았는데 4대 부모님 한꺼번에 봉사(奉祀)하는 종이가 떨어졌다.
한 해, 설과 추석에 걸쳐 두 차례뿐이지만 4대 양친 모실 종이 양이 워낙 많으니 만만하거나 얼렁뚱땅 짐작했었나 보다.
시간 날 때 미리 준비해 둬야 수월할 텐데, 내가 나를 짐작건대 볼 것 없이 올 추석 목전에서야 허둥댈 것이 뻔하다.
세상사,
닥치지 않아도 알 수 있거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 태반이기는 하여도 섣불리 단정하여 결론지을 일도 아니지 싶다.
주문한 커버 씌운 새 핸드폰도 손에 익었고,
별안간 새 운동화가 두 켤레 생겼고,
셋째가 건넨 합격증으로 설빔 제대로 갖춘 갑진년 설날.
무엇보다,
아픈 곳 없이 모두 건강하니 더 바랄 것 없는 일이지.
깊이가 다른 바다라도 수평선의 높이는 모두 같다는 것을 알고,
수평선의 높이가 같아도 그 아래 바다의 깊이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 다르고 같은 운명 총량의 공평을 안다.
내게 온 오늘의 평온.
조상님들의 은혜와 현생을 함께 가는 이들의 보살핌 덕이려니...
그저 내 새끼들,
행여 풍랑에 부대껴 힘들어할지언정 수평선 같은 공평한 운명 총량을 믿고, 한 번뿐인 짧은 삶을 일희일비로 경솔하게 좌절하고 낙담하여 고여 썩어가지 말기를.
그저, 몸도 마음도 건강하기를.
돌이켜 후회 없도록 내딛는 걸음을 믿고 당당하기를.
202402121741월
Billy Vaughn-Wheels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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