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따뜻한 바깥채에서 지 언니와 한 이불 쓰며 살이 통통하게 오른 삼월이.
정작 날이 따뜻해지니 밖으로 쫓겨나기 일쑤다. 아마도 또 털갈이가 시작되려는지 "털이 너무 빠져서 안 돼유!"라는 지 언니에게 쫓겨나는 게지만, 내가 보기엔 출근복에 하나 붙으나 열 개 붙으나 개털 범벅인 건 매한가지일 텐데 변심이 유난스럽다.
여지없이 쫓겨난 삼월이.
바깥채 화장실로 용변 보러 안채 부엌문을 밀치고 나서는데, 정체불명의 앓는 소리를 내며 날리다 난리.
이 지지배, 이젠 아예 <문 열어주는 집사>로 내가 인식되어 있나 보다.
"봉수 노인네! 얼른 문 열 거라 문 열어!"
봄이 왔는데 겨울로 쫓겨 난 삼월이.
이거야말로 춘래불사춘이 아니던가?
■ 似[人](人+以)닮을 사 / 닮다. 같다. 비슷하다. 흉내내다. 잇다. 상속하다. 보이다.
누구든 나를 심술 나게 하면, 출근하고 빈집이 될 때마다 바깥채 문을 열심히 열어 줄 생각이다.
다니러 왔던 둘째가 따뜻한 이국(異國)으로 떠났다.
오늘 떠난다는 것, 용변 보러 건너갔다가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약봉다리를 보고 그제야 알았다. 설 지나고 다음 달 초순쯤에는 돌아가겠거니 막연하게 짐작하고 있었더니 참 대책 없는 아빠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오늘 잡아 놓았던 부산행 일정을 부랴부랴 취소했다. 배웅이라야, 남들처럼 공항 청사에서 손 흔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공항행 버스가 출발하는 신도심 터미널까지 태워주고 차창 안의 실루엣에 손 흔들어주는 것뿐이었지만, 내년이나 되어야 다시 만날 아이를 두고 콧구멍에 바닷바람을 쏘이자고 김삿갓 유랑하듯 한 다리 건너 초대받은 남의 행사에 쫓아다닐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아이가 앉아 있는 차창이 반대편으로 바뀌고 버스의 꽁무니가 터미널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세상 살아가는 방법이 천차만별이지만, 쉽게 갈 수 있는 길도 많았을 텐데... 참, 사서 고생하는구나. 어쨌건 멀리 보고 제가 선택한 길이니, 어디에 있든 그저 건강하기나 해라'
그나마, 이젠 자리 잡혀 정주 여건이 나아진 듯싶어 다행이다.
202302171909토
Alex fox-Historia De Un Amor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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