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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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설사.

by 바람 그리기 2018.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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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에 돌아오면서부터 시작한 설사.

시도 없이 괄약근이 벌어지고 밑이 빠질 지경이다.

정로환을 세 번은 먹은 것 같은데 차도가 없다.

이정도면, 섭생의 불균형에서 오는 단순한 설사가 아니라 세균 감염 때문에 장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듯싶다.

어머님이 잡수시던 약을 뒤적거려 같은 증상으로 잡수셨던 약을 꺼냈다.

 

내 방에 들여놓고 남은 것을 놓아드렸던 책꽂이.

그곳에 살림을 차곡차곡 정리해 놓으며 좋아하셨던 어머니.

얼추 일 년 전 일이지 싶다.

쓰시던 안경, 잡수시던 약, 파스…. 그때 그대로인데.

믿기지 않은 이별은 그대로인데, 이별의 아픔만 점점 희미해진다. 다 그렇게 사는 게지만, 부재를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봉합한 채 뒤로 밀어두고 점점 존재를 잊어가는…. 이 부조리한 치유의 지금이 야속하다. 살아있는 자가 살아남기 위한 자기방어의 방법이겠지만….

 

"나 죽으면 니 애비 밥도 못 얻어먹고 괄시 받을 테니, 할미 죽어도 니 애비는 니들이 챙기거라…."

옳지 않은 것 앞에 옳지 않음을 말 할 수 있을 정도의 힘만 있어도 걱정이 없을 일이다. 옳지 않음을 목도하고도 그냥 덮어 뒤로 밀쳐, 평상을 흔드는 부대낌을 애써 내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 이것 또한 봉합하지 않고 뒤로 밀쳐버린 당신의 이별처럼, 살아있는 내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자기 방어와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아니, 관계의 회피나 외면의 비겁한 자기 모순의 배반이라도.

 

여러 나팔꽃과 메꽃 유홍초의 넝쿨이 숲을 이룬 화단.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애를 써도 꽃을 피울 기미가 없다.

더위에 이미 무너진 생체리듬에 대한 뒤늦은 처방. 그 모습이, 영양가 없는 내 꼴 같다.

이러다 씨도 못 받을까 안날이 난다.

추위는 별안간 닥쳐 속절없이 스러져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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