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나를 간 보고 나는 날씨 간을 보며 보낸 하루.
결국 선택한 슬기로운 타협.
예취기 본체만 거실 앞 처마에 꺼내 놓고 손을 봤다.
난닝구에 슬리퍼를 끌고 주유소를 다녀와 시작한 생 쇼.
해마다 닦고 조여 정비한 후 창고에 보관하는데도, 일 년 후 첫 시동을 터트리는 게 보통 고역이 아니다.
스타터를 열나게 당기다가 주저앉아 담배 한 대 피고. 또 열나게 당기다가 담배 한 대 피고...
옆구리가 뒤틀리는 것은 양반이고, 나중에는 똥구멍까지 벌렁 거린다.
식은 부침개 한쪽 먹고는 못 할 일이다.
만세 불기 직전에 시동이 터지고...
예열하고 혼합유 가득 채워 놓았으니 80%는 마무리했다.
비 그친 마당에서 붕대 꺼내 점검하고 본체와 조립해서 운전해 보고, 혼합 오일 사러 가는 길에 날 갈고 벌초 후 뿌릴 살충입제 사다 놓으면 전투 준비 끝.
창고 벽면에 매달린 자루에서 꺼낸 코팅 장갑.
하도 오래돼서 코팅 고무가 다 삭고 녹았다.
젊은 이들을 골라 뽑던 지역에서는 근무 조건이 좋았던 S사.
건설붐을 타고 외국 회사와 합작으로 창립한 신재료, 신공법의 자재를 생산하던 대 기업 계열사.
말이 좋아 '신재료, 신공법'이지 껍데기 벗겨 놓으면 노가다 [벽돌공장]과 다름없었다. 그때, 일주일에 세 켤레씩 지급받던 장갑. 그까짓 게 뭐라고, 그걸 아껴서 모아두었던 장갑. 아니, 꼭 아껴서라기 보다는 쓰던 장갑이 멀쩡하거나 설령 떨어져도 버려진 멀쩡한 장갑을 주워 끼면서 남겨진 몫. 지금 생각하니, 남들 끼다 버린 것 까지 주워 껴야 했는지... 구차스러웠다.
"아끼면 똥 된다"를 이은 생각.
... 반대로 살았다. 그때 백수로 한동안 놀더라도 미래를 위해 나에게 투자를 했어야 했는데...
-하긴 그랬으면 진작에 <명퇴> 당했을까?
'3교대 육체노동.'
내 지난날이 배짱이 만은 아니었네.
나는 왜 그렇게 몸으로 때우는 삶을 선이라고 생각했을까?
'낙서 > ┗(2007.07.03~2023.12.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의 손에 열쇠. (0) | 2020.09.21 |
---|---|
해가 중쳔여! 얼렁덜 일어낫! (0) | 2020.09.19 |
소지 (0) | 2020.09.17 |
半神半人 (0) | 2020.09.16 |
오늘 한 일. (0) | 2020.09.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