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 않은 이유.
본문 바로가기
낙서/┖ 끽연

슬프지 않은 이유.

by 바람 그리기 2016. 4. 25.
반응형

 

병원서 돌아와 저녁 먹고 아침에 열어 둔 장단지 뚜껑 덮고 내려와 개밥 챙기고 설거지를 하는데,

틀어 놓은 핸드폰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최희준의 '하숙생'

내려받은 음악이 워낙 많은 데다가 계속 랜덤재생을 해서였는지 이 음악이 들어있는 것을 잊고 지냈다. 어제부터 랜덤을 끄고 음악을 들은 덕택이다.

 

내가 태어난 다음 해에 발표된 노래이니, 어쩌면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받았던 같은 우주의 기운을 품었기 때문일까?

대갈통에 쇠똥도 떨어지지 않았던 어린 내가, 아버지 방 윗목에 놓여있던 커다란 진공관 전축 턴테이블이 돌아가며 이 노래가 흘러나올라치면 왜 그렇게 슬펐는지 모르겠다. 아마, 20대 후반까지도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들을 때마다 그 감정이 변함이 없었는데,

이상하다?

오늘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며 듣는 같은 노래가 하나도 슬프지 않고 담담하다.

 

'틈 없이 줄지어 선 소립자들이 일관된 방향으로 불변의 속도로 밀려가고 있는 것'이 삶이라 생각해서일까?

나고 죽음이든,

전생과 현생과 이생이든,

끊김 없이 이어져 나가는 초침 같은.

이 노래를 들으며 슬퍼했던 시절엔,

차원이나 시간을 현생에 단절시켜놓고 전과 후의 연속성을 바라보지 못했음인가보다.

도사가 따로 없네! ㅋㅋ

그러고 보니 어제 아침엔 삼월이 언니와 텔레비전을 보다가,

평행이론과 시공간의 절대적 관점에서의 사유법에 대해 말해줬다.

미분과 적분의 사유 끝에도 찾을 수 없는 모든 궁금의 해결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커피와 담배가 참, 맛나다.

반응형

'낙서 > ┖ 끽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춤추는 나비.  (0) 2016.04.29
포도잼.  (0) 2016.04.28
조숙과 조로.  (0) 2016.04.24
둘.  (0) 2016.04.23
시간의 원천.  (0) 2016.04.22

댓글